항목 ID | GC0090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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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哲和 |
영어음역 | Jeong Cheolhw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진각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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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성별 | 남 |
생년 | 1878년 |
몰년 | 1943년 |
본관 | 미상 |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정철화가 처음 의병을 일으킨 것은 1905년이었으나,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한 시기는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군의 강제 해산을 계기로 방인관(方仁觀) 의병부대에 가담하면서부터이다.
이전의 의병 활동 경험으로 곧바로 간부직인 서기를 맡아 의병 14명을 이끌고 경기도 여주군 이모산(二毛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또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죽산면(竹山面) 칠장사(七長寺)에서 30여 명의 소규모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안성·충주(忠州)·청주(淸州)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서울 외곽에서 은거하던 중 1907년 9월 30일 일본 경찰에 붙잡혀 유형(流刑) 15년을 언도받고 복역 중에 석방되었다. 이 후 1913년 9월에 임병찬(林炳瓚)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의 일원이 되었다.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 내각총리대신·조선총독 등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군자금 모금을 벌이다가 1914년 4월 다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3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 뒤 1932년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지내다가 1941년 환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