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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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寅秀 |
영어음역 | O Insu |
이칭/별칭 | 오경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도형 |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명은 오경수(吳敬秀)이다. 오인수는 18세부터 포수들이 모여 솜씨를 자랑하는 화포계(火砲契)에 참여하여 늘 1등을 차지하는 등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의병 300명을 이끌고 안성(安城)·죽산(竹山)·양지(陽智) 등지에서 일본 헌병대,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고 경찰 수십 명을 사살하였다.
의병장 정철화(鄭哲和)와 합세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안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경기도 안성군 매봉재 전투에서 일본군 1개 대대와 일주야(一晝夜)로 대전을 벌이다가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후퇴하게 되었다.
의진에서 이탈한 오인수는 산야를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왔으나, 일제의 토벌대가 그의 집을 에워싸고 달려들어 중과부적으로 피체되고 말았다. 오인수는 서대문 감옥에서 8년 복역한 후 아들 오광선(吳光鮮)을 데리고 만주(滿洲)로 망명, 아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76세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