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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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岩谷更生指導部落 |
영어음역 | Amgok Gaengsaeng Jido Burak |
영어의미역 | Amgok Restoration Guidance Villag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진갑 |
[정의]
1933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 선정된 갱생지도부락.
[개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말 농업 공황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1930년대 들어 농촌진흥운동을 실시하였으며, 농촌경제갱생계획에 따라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였다. 관제기구로 농촌진흥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각 읍면별로 30~40호 단위의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여 5년 기한의 농가경제갱생계획을 실시했다. 1938년까지 전체 농가의 17%에 해당하는 46만여 호가 지도농가로 지정되었다.
1938년 1차 농가경제갱생계획이 만료되었으나, 갱생지도부락 중 성과가 있다고 판단된 부락에 대해서는 부락시(剖落是)를 수립하여 자주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그 갱생 및 향상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부락시로 이행된 부락을 갱생공려부락이라고 하였다.
경기도 용인군은 농가경제갱생계획 실시 초기인 1933, 1934년에 24개 부락을 선정하였고 이후 12년에 걸쳐 400여 개의 부락을 더 선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1933~38년에 제1차 농가갱생지도부락의 수는 훨씬 적었다. 1938년 4월 현재 경기도 전체에서 279개 부락민이 선정되어 갱생지도가 실시되었다.
[설립목적]
식량의 충실한 보급, 금전경제의 수지 균형, 부채 근절을 목적으로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 암곡갱생지도부락이 선정되었다.
[변천]
암곡갱생지도부락은 원래 전체 20호의 한촌(寒村)으로, 가난한 소작농 정명호(鄭明好)의 주도로 자급비료 증산을 통한 쌀·보리의 증수가 장려되었고, 이를 위해 부인 11명으로 구성된 근로부인단을 조직하였다. 전체 20호 중 16호에서 퇴비 제조를 했으며, 그 퇴적량도 3만 1,600관에 달해 면내에서 유일하게 퇴비모범부락이 되었다.
1931년부터 식량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고구마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크게 수확하였고 돼지를 기르는 집도 12호에 달하였다. 이러한 부락 전체의 노력으로 1933년 갱생계획 실시 부락으로 선정되었고 이를 주도한 정명호는 농촌진흥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았다.
1933년에 선정된 암곡갱생지도부락은 비료 증산, 논·밭 공동 경작, 고구마 재배 등으로 1935년 당시 부채 호수와 부채액이 1932년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례준칙에 따른 관혼상제를 실시하여 비용을 절약했으며, 부락민 전체의 자작농 창정을 목표로 각 호에서 절약금을 저축하여 토지를 구입하도록 장려하였다.
[의의와 평가]
갱생지도부락은 농촌경제의 안정에 기여하였으나, 전체 부락의 10%에 불과하여 전시 행정적 요소가 강했고, 1937년 이후 전시동원체제로 전환되면서 수탈 체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