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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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宋言愼肖像-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 |
영어음역 | Seonjoeoseo Sasongeonsin Milchalcheopgwa Jeongjoeoje Seongjoeoseo Milchalbal |
영어의미역 | The King Jeongjo's Postscript to the King Seonjo's Secret Correspondences and The Secret Correspondences of King Seonjo Sent to Song Eonsin |
이칭/별칭 | 『이중로 초상언신 밀찰첩』,『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은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12월 26일 -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 및 송언신 초상 -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 보물 제94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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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 및 송언신 초상 -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 보물 재지정 |
성격 | 고문서 |
관련인물 | 선조|송언신 |
발급자 | 선조|정조 |
수급자 | 송언신|송언신의 후손 |
발급일시 | 1593년(선조 26)~1599년(선조 32)|1794년(정조 18) |
소장처 | 여산송씨 호봉공 종중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심석리 산66[경충대로 1028]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에 기탁 보관된, 선조의 친필 비밀문서와 정조의 어친필(御親筆)을 별책으로 묶은 첩.
[개설]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과 『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正祖御製宣祖御書密札跋)』은 모두 2첩으로 묶여진 고문서로, 1987년 12월 26일 보물 제941-1호로 문화재청에 지정 등록되었다가, 2004년 영정과 분리되고 명칭도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두 문서는 정조의 명(命)에 의하여 광주(廣州)에 어서각(御書閣)을 건립(建立)하여 그 곳에 보관해오다가 1970년 경기도 성남시(城南市) 지구개발(地區開發)로 그 지역이 수용되면서,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모선재(慕先齋)로 옮겨 보관했다. 그러다가 1999년 여산송씨 호봉공 종중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탁하였다.
송언신은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좌랑·병조정랑·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역임하고,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공조참판이 되어 평안도순찰사를 겸하다가 다시 함경도순찰사를 겸하면서 군병(軍兵) 보집에 힘썼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등에 책록되었고, 이 문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정황을 담은 문서이다. 이 일로 그는 선조의 특별한 신임을 얻어 이조판서까지 역임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어려운 시기에 양사의 장을 역임하면서 당쟁의 선봉이 되었다가, 광해군 초년에 축출되었다.
[형태]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은 선조가 송언신에게 12년에 걸쳐 직접 써서 내린 밀찰 7건과 별지 2장을 합쳐서 첩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서첩은 원래 길게 이어져 있던 종이를 옆으로 적당하게 잘라, 앞뒤에 따로 표지를 붙인 것이다.
정조가 이 서첩을 보고 나서 7건에 대한 내용 해설을 곁들여 직접 발문을 지어 내리고, 호조판서에게 명하여 원첩을 궤에 담아 송언신의 후손에게 되돌려주고 따로 한 부를 똑같이 써서 내각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이고,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도 그 때 개장(改粧)하였다.
[구성/내용]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은 모두 7건이다. 첫번째 밀찰의 내용은 1593년 7월에 쓴 것으로 선조가 행재소인 의주에서 보낸 것이다. 북도의 일을 위임하고 피난 중 헤어진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찾아 보호해달라는 내용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밀찰은 1597년 9월부터 11월의 것으로 국가가 어수선함을 왕 자신의 죄로 자책한다는 것과, 송언신의 공(功)과 그가 올린 진상품에 대한 대가로 하사품을 내린다는 내용이다.
네 번째 밀찰은 1598년의 것으로 비방에 구애받지 말고 직무에 전념하라는 내용이다. 다섯 번째 밀찰 역시 1598년에 쓴 것인데, 송언신이 건의한 장수 임명의 일은 이미 늦었음을 알리는 내용으로, 그에게 내린 하사품의 사물단자가 첨부되어 있다.
여섯 번째 밀찰도 1598년에 쓴 것으로 북방의 방어와 이를 방비할 적임의 장수를 얻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일곱 번째는 1599년 송언신이 서울로 돌아올 것을 허락한다는 내용으로 별지가 포함되어 있다.
『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은 원래 제목이 ‘이조판서영양공송언신가장선묘어서밀찰발(吏曹判書榮襄公宋言愼家藏宣廟御書密札跋)’이다. 선조가 송언신에게 직접 써서 하사한 7건의 어찰(御札)에 대하여 해설을 곁들여 기술한 것으로, 임금과 신하 간의 제회(際會)를 극히 찬양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문서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정황, 북방의 방어 등 국방에 관한 자료, 사신 왕래, 선물 교환, 의식제도, 송언신의 가계, 조선 전기의 가족제도 연구 등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송언신 영정과 같이 일괄로 남아 있어 가치가 더욱 증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