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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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處士慶州李公鍾彩妻孝婦金海金氏實蹟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54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유화 |
건립 시기/일시 | 1949년 7월 -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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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540 |
원소재지 |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 -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 |
성격 | 사적비 |
관련 인물 | 이종채|김해김씨 |
재질 | 화강암|오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50㎝[총 높이]|30㎝[비석 높이]|45㎝[너비]|21㎝[두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처사 이종채의 처 효부 김해김씨의 사적비.
[개설]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아버지는 김정두(金正斗)이고, 남편은 이종채(李鍾彩)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건립 경위]
이종채의 처 김씨 부인이 남편과 같이 널리 아픈 사람은 구휼하고 부모에게 효도가 지극하므로 지역 사회에서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處士慶州李公鍾彩妻孝婦金海金氏實蹟碑)를 건립하였다.
[위치]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는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는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540번지에 서 있다.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형태]
비신은 오석이며, 비갓은 화강암이다. 비신의 양 옆을 화강암으로 보호하고 있다. 총 높이는 250㎝이고, 비석 높이는 30㎝, 너비는 45㎝, 두께는 21㎝이다.
[금석문]
비신 전면 중앙 우측에는 ‘처사 경주 이공종채처(處士慶州李公鍾彩妻)’, 중앙 좌측에는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孝婦金海金氏實蹟碑)’라고 쓰여 있다.
후면에는 “뜻을 기리고 몸을 기림은 참으로 부모를 섬기는 큰 절개인데 뜻 기림이 더욱 어려움으로 예와 지금에 능히 그 뜻을 가리는 자가 하나 둘도 보기 어려운데 근래에 여수군에 효부 김씨가 있으니 김해인 정두의 따님이다. 어릴 때부터 지조가 있었는데 출가하여 동군에 사는 경주 이종채의 부인이 되었으니 종채는 옛 백포공 규보의 자제이다. 유인이 효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공경으로 남편을 받들어 날로 쓰고 움직임이 하나도 지극한 정성에 우러나지 않음이 없었다. 백포공이 화타와 편작의 의술을 익히어 대중을 구제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므로 널리 문호를 개방하고 그 대가를 받지 않으므로 전라도, 경상도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날마다 항시 오륙십 명씩 되었으나 유인이 남편과 더불어 서로 힘써서 지성껏 그 뜻을 받들고 물자가 떨어져도 꾸중하지 않으며 식량이 없어도 민망히 여기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공궤해 드리되 수십 년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아! 이는 보통 사람의 어려운 바이다. 이제 보통 사람의 어려운 바인데 어려워하지 않으니 진실로 타고남이 아름답고 배워서 익힘이 깊은 게 아니면 어찌 능히 그러하겠는가! 무릇 이와 같이 그 떳떳한 행실에 나타남이 이따금씩 탁월한 자가 있었다. 그 시어머니께서 앞을 못 보아 앞뒤를 분간치 못하매 유인이 곁을 떠나지 않고 앉으며 누으매 부축하고 매양 식사할 때에는 손수 달고 맛있음을 수저를 들어 권해 드리며 집안일에 크고 세미함을 반드시 물어서 행하고 매양 밤이면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이마를 조아리며 기도하였는데 천수을 살다가 마침내 돌아가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함과 얼굴빛이 파리함을 사람들이 측연하여 감탄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제 팔도가 혼란하여 윤강이 이미 윤락하므로 법령이 또한 무너졌으니 어찌 남편의 소중함을 깊이 알아서 그 부모에까지 미침을 얻어 보리요. 부모의 몸을 봉양하는 자도 보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뜻을 기리는데 능한 자를 가히 보겠는가. 그러한즉 유인과 같은 분은 지금 세상에서 구한다면 더불어 짝할 이가 없을 것이요. 마땅히 옛사람 가운데서 구함에 해당할 것이니 응당 우리나라에 모든 군자로는 아울러 하늘의 도리를 발로로 하여 유인으로 하여금 세상에 자취가 없어지지 않으려 함이다. 다만 왕장이 이미 추락하여 추천과 포양할 땅이 없으니 차라리 한조각 비석을 세워 동서로 지나다니는 자가 능히 격려함이 있어서 앞날에 교화를 먼 후세에 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비석이 이미 구비되매 멀리 지리산의 병든 늙은이 정기에게 촉탁함으로 그 사실을 위와 같이 서술한다. 을축년 맹추 서주 정기 지음 서흥 김규태 씀[養志養體固事親大節而養志尤難故古與今能養其志者難一二見近麗水郡有孝婦金孺人者金海人正斗其父也 幼有志操及適人為同郡人慶州李鍾彩室鍾彩故柏圃公圭莆之子也孺人孝事姑敬奉夫子日用云為無一不自至誠中來 柏圃公熟華扁術念切濟衆廣開門墙不取其賞於是兩南之人聞風奔集日恒五六十人孺人與其夫胥勉烙奉其志需乏而不咨糧絕而不悶竭誠供饋積數十年而不懈也鳴呼此衆人之所難也今衆人之所難者而不難之苟非賦與之美髹染之深其能爾乎夫如是其見於庸行往往有卓異者其姑失明嚮背不分孺人不離傍側後先扶持之每食手奉甘腝舉匙勸進家事鉅細必稟而行每夜稽辰露禱及終天年其哭泣之哀顏色之感人無不惻然感嘆者唉今八埏蕩板網已淪矣法且□矣安得見深知所天之為重而及於其所自出乎養體者難覩况可見養志之能者乎然則若孺人者求之當今無與儔當於古人中求也宜其海上諸君子竝發天懿不欲使孺人泯沒於世也但王章旣墜薦褒無地無寧斲貞珉一片使東西行過者有能激發而以之樹風聲於來永也石旣具遠屬方壺病叟鄭琦敘其事如右 屠維赤奮若 孟 秋 瑞州 鄭琦 撰 瑞興 金奎泰 書]”이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21년 6월 현재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가 서 있는 비석군 옆으로 주유소 공사가 진행 중이라 보호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김해김씨의 부모에 대한 효행과 남편에 대한 열행을 세긴 「처사 경주 이공종채 처 효부 김해김씨 실적비」는 이곳을 찾는 이에게 선조들의 효행사상을 잘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