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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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瑺 |
영어공식명칭 | An Sang |
이칭/별칭 | 죽계(竹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개설]
안상(安瑺)[?~?]은 16세기 문신이자 음악행정가였다. 영천군수(榮川郡守) 재임 중에는 이황(李滉)[1501~1570]의 건의로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였다.
[가계]
안상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해주목사를 역임한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5세손이 된다. 고조할아버지는 안경(安璟), 증조할아버지는 안인후(安仁厚), 할아버지는 안성(安珹), 아버지는 승의부위 안순필(安舜必),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조강문(趙康門)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로 도정을 지낸 이계성(李繼性)의 딸이다.
[활동 사항]
안상은 1553년(명종 8) 공조정랑에 부임하여 경복궁 재건 사업에 참여하였고, 1555년에는 영천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영천군 인근에는 안상의 관향인 순흥도호부가 있었다. 하지만 1457년(세조 3) 금성대군(錦城大君)의 단종복위운동 때 순흥 지역에 살고 있던 순흥안씨들이 대거 연루되어, 멸문에 가까운 화를 입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순흥 지역에 있던 선조들의 묘소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피폐해진 곳이 많았는데, 안상은 영천군수로 부임한 직후 순흥에 있는 선조의 묘소를 정비하였으며, 재사인 영모암(永慕庵)을 건립하는 등 가문 재건에 힘썼다. 1558년(명종 13)에는 이황이 안상에게 편지를 보내어 서원 건립을 청원하였다. 이에 이황과 함께 영천군 지역 최초의 서원인 이산서원을 건립하게 된다.
안상은 1561년 장악원첨정이 제수된 후에는 음악행정직을 수행하였다. 당시 악사 홍선종(洪善終)과 악공 허억봉(許億鳳)·이무금(李無金)의 도움으로 1572년(선조 5) 『금합자보』[일명 『안상금보(安瑺琴譜)』]라는 거문고 악보를 완성하였다. 1565년(명조 20) 중화군수로 부임하였으며, 1573년 덕원부사로 재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안상은 중화군수로 재직 중에 『속문범(續文範)』, 『한서전초(漢書傳抄)』, 『근사록(近思錄)』, 『용학석의(庸學釋義)』 등 서적을 간행하였으며, 덕원부사로 재임 시에는 목판본 『금합자보(琴合字譜)』를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