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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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龍穴里瓦窯址 |
영어공식명칭 | Roof Tile Kiln Site in Yonghyeol-ri, Yeongju |
이칭/별칭 | 영주 용혈리 기와가마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문평로 623[용혈리 1238-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재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9월 12일~1998년 10월 17일 - 영주용혈리와요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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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8월 9일 - 영주용혈리와요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0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12월 22일 - 영주용혈리와요지 도지정문화재보호구역[필지수: 5필지/보호구역면적: 468.2㎡]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용혈리와요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소재지 | 영주용혈리와요지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문평로 623[용혈리 1238-1] |
성격 | 가마터 |
지정 면적 | 468.2㎡ |
소유자 | 영주시 |
관리자 | 영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의 기와가마터.
[개설]
영주용혈리와요지(榮州龍穴里瓦窯址)는 주변에 있는 선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가마는 선돌에서 북동쪽으로 3m 정도 떨어져, 북동-남서향으로 나란히 3기가 위치한다. 출토유물은 가마 바닥에 깔아 둔 기와조각[와편]만이 확인되었다.
[변천]
영주용혈리와요지는 가마의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영주용혈리와요지는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납들고개마을에서 서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월미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금광-용혈 간 도로 확장·포장공사 진행 중에 선돌이 확인되어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1998년 9월 12일부터 10월 17일까지 수습조사를 하였다. 수습조사 결과, 선돌 1기와 기와가마 3기가 확인되었다. 3기의 가마 가운데 1, 2호는 황갈색 풍화 암반층을 터널식으로 뚫어 축조한 지하식 오름가마이고, 3호는 반지상식 오름가마이다.
1호는 3기의 가마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다. 아궁이와 연소실, 소성실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으나 연도부는 일부 유실된 상태이다. 요전부는 골짜기 바닥을 정지한 후 횡단면은 반타원형으로, 평면은 ‘ㄴ’자 형태로 뚫어 아궁이와 연결했다. 연소실과 소성실 경계부에 높이 62㎝ 정도 단이 축조되어 있다. 소성실 바닥은 계단이 형성되지 있지 않은 채 18도 정도 경사를 이루며, 연도부 바닥과 연결된다. 규모는 길이 905㎝, 너비 235㎝이다.
2호는 3기의 가마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다. 아궁이와 연소실, 연도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구조는 1호 가마와 같으며, 아궁이를 소나무로 폐쇄하였다. 규모는 길이 560㎝, 너비 185㎝이다. 3호는 1호 가마와 2호 가마 사이에 위치하며, 연소실과 소성실의 측벽과 바닥 일부만이 남아 있다.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는 높이 20㎝ 정도의 단이 형성되어 있고, 소성실 바닥은 30도 정도 경사져 있다. 규모는 길이 560㎝, 너비 185㎝이다.
출토유물은 기와조각이 있으며, 두드림무늬[타날 문양]는 어골문과 격자문이 주류를 이룬다. 요전부 혹은 연소실이 위치하는 층위로 볼 때 2호→1호→3호 순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영주용혈리와요지는 1999년 8월 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용혈리와요지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존재하는 진월사(陳月寺)를 비롯해 주변 지역에 기와를 공급하던 가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