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47
한자 南夢陽
영어공식명칭 Nam Mongyang
이칭/별칭 응길(應吉),야은(野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1년연표보기 - 남몽양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50년연표보기 - 남몽양 사망
출생지 경상도 영해도호부 인량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옥산리 7]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영양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가계]

남몽양(南夢陽)[1771~1850]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야은(野隱)이다. 남필대(南必大)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증(贈) 좌승지(左承旨) 남경렬(南景烈),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순도(趙純道)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숙부 남경희(南景熙)와 안상침(安尙沉)의 딸 순흥안씨(順興安氏)에게 출계하였다. 할아버지는 남주만(南周萬), 증조할아버지는 남국광(南國光)이며, 부인은 이정악(李鼎岳)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와 이동복(李東馥)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활동 사항]

남몽양은 1771년(영조 47) 경상도 영해도호부 인량리(仁良里)[지금의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났다. 여주이씨와 혼인 후에는 처향의 경주 유림들과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종유하였다. 경사(經史)에 조예가 깊었으며, 중망(重望)이 있어 고을에 큰일이 있을 경우 유림들이 남몽양에게 문의하였다. 1816년(순조 16) 흉년이 크게 들자 고을을 대표해 감영(監營)에 부세 감면을 청원하였으며, 단산서원(丹山書院) 중건 때에는 경상도관찰사 이경재(李景在)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2권 1책의 『야은유고(野隱遺稿)』가 전한다. 서(書)의 「상이순상품강단원제조(上李巡相稟講丹院諸條)」는 단산서원 중건 때 경상도관찰사 이경재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보낸 편지와 조목이다. 「비국정사(備局呈辭)」는 1816년 흉년 때 부세 감면을 청원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당시 영해 지역의 경제상을 보여준다.

[묘소]

남몽양의 묘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 있다. 하겸진(河謙鎭)이 묘갈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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