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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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潚 |
영어공식명칭 | Park Suk |
이칭/별칭 | 숙이(肅而),농와(農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665년 - 박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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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48년 - 박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48년 - 박숙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수여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무안 |
대표 관직|경력 |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박숙(朴潚)[1665~1748]은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 부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문집으로 『농와집(農窩集)』이 전한다.
[가계]
박숙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숙이(肅而), 호는 농와(農窩)이다. 대사간을 지낸 아버지 박문약(朴文約)과 어머니 아주신씨 사이에서 1665년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남양홍씨·안동권씨 사이에서 5남 5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박숙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관후하고 재주가 비상하였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임천(林泉)에 소요하며 은일군자(隱逸君子)로서의 삶을 살았다. 1741년(영조 17) 선조 박의장(朴毅長)의 분묘를 수호하기 위해 관아에 세금을 감해 달라는 청원을 주도하는 등 위선(爲先) 사업에도 힘썼다. 권한(權澣)·권상일(權相一)·권덕수(權德秀)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숙은 10년 연상인 박담(朴潭)과 함께 금서헌(琴書軒)에서 책속에 묻혀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후 이현일·이재 부자 문하에서 수학을 했고, 본인의 서실을 명농헌(明農軒)이라 명명하였다. 박숙은 「무극태극도설(無極太極圖說)」, 「하도음양오행설(河圖陰陽五行說)」에 주석을 붙여 독자적으로 해설한 글을 남겼다. 또한, 시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는데 인간생활을 자연 속에 투영한 것이 많다. 문집으로는 1852년(철종 4) 간행한 4권 2책의 『농와집』이 전한다.
[묘소]
박숙의 묘갈명은 외손 이수영(李秀榮)이 지었고, 묘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45년(영조 17) 넷째 아들 박두상(朴斗相)이 문과에 급제한 덕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