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34
한자 南必大
영어공식명칭 Nam Pildae
이칭/별칭 여경(餘慶),용암(龍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8년연표보기 - 남필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4년 - 남필대 태릉참봉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66년연표보기 - 남필대 사망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웅창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영양
대표 관직|경력 태릉참봉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남필대(南必大)[1608~1666]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지냈다.

[가계]

남필대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여경(餘慶), 호는 용암(龍巖)이다. 남수(南須)의 7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남시준(南時俊), 할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남정국(南貞國), 아버지는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지낸 남율(南慄), 어머니는 봉사(奉事)를 지낸 박응달(朴應達)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 부인은 직장(直長)을 지낸 조전(趙佺)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와 이명운(李溟運)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활동 사항]

남필대김시양(金時讓)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이휘일(李徽逸)·권상길(權尙吉)·박호(朴滈)·신길휘(申吉輝) 등의 인사들과 교유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1664년(현종 5) 태릉참봉(泰陵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병환으로 곧 사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같은 해 왕명으로 왕릉의 수목을 적간(摘奸)하였는데, 모두 도벌한 곳이 있어서 각 능의 참봉들이 모두 나포되었다. 고향에 있던 남필대도 나포되었으나, 병으로 방송되었다.

고향에 용암정사(龍巖精舍)를 짓고 소요하였으며, 영해(寧海) 입향조 남수를 제사 지내기 위해 옛 종가 터에다가 작은 집을 지었으며, 후손 남달만(南達萬)이 처인당(處仁堂)[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2길 36 소재]이라고 편액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웅창(熊倉)에 묘소가 있다. 묘지명(墓誌銘)은 이휘일, 묘갈명(墓碣銘)은 남경의(南景義)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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