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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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震萬 |
영어공식명칭 | Nam Jinman |
이칭/별칭 | 형지(亨之),심안당(審安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97년 - 남진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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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6년 - 남진만 진사시 입격 |
몰년 시기/일시 | 1773년 - 남진만 사망 |
출생지 | 원고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거주|이주지 | 시암고택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원구리 217-1] |
묘소|단소 | 호암동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기암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영양 |
대표 관직|경력 | 진사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남진만(南震萬)[1697~1773]은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심안당유고(審安堂遺稿)』를 남겼다.
[가계]
남진만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형지(亨之), 호는 심안당(審安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종사랑(從事郎) 남상주(南尙周), 할아버지는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남노명(南老明), 아버지는 남국시(南國蓍), 어머니는 생원(生員) 류경휘(柳慶輝)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인데, 숙부 남국신(南國藎)과 좌랑(佐郞)을 지낸 김수담(金壽聃)의 딸 순천김씨(順天金氏)에게 출계하였다. 부인은 서복래(徐復來)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활동 사항]
남진만은 1697년(숙종 23)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원고리(元皐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1726년(영조 2)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양친을 섬기는 데 효성을 다하였고 검약하였다. 처가에서 균분상속에 의거해 재산을 나누어 주려고 하자, 사위는 바깥사람이라며 단호히 거부하였다. 또한, 전답을 팔아 기근으로 굶는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등과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집 북쪽에 심안당을 짓고 소요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2권 1책의 『심안당유고』가 전한다. 시(詩)·서(書)·잡저(雜著)·발(跋)·제문(祭文)·묘지(墓誌)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기암리 호암동(虎巖洞)에 묘소가 있다. 남정철(南廷哲)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