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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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彪 |
영어공식명칭 | Baek Pyo |
이칭/별칭 | 자피(子皮),성암(省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05년 - 백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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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46년 - 백표 생원시 입격 |
몰년 시기/일시 | 1684년 - 백표 사망 |
출생지 | 원고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대흥 |
대표 관직|경력 | 생원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백표[1605~1684]는 백현룡(白見龍)의 문인으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가계]
백표(白彪)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자피(子皮), 호는 성암(省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백문보(白文輔),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백수렴(白受廉)이다. 아버지는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낸 백득인(白得仁)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오민수(吳敏壽)의 딸 함양오씨(咸陽吳氏)이다. 부인은 직장(直長) 이윤지(李允智)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활동 사항]
백표는 어린 시절 족대부(族大父)인 성헌(惺軒) 백현룡에게 수학하였다. 백현룡을 통해 퇴계(退溪)의 학문을 접했던 백표는 백현룡이 사망한 후에는 『도산전서(陶山全書)』를 구하여 침식을 잊고 탐독하며 사숙(私淑)하였다. 어머니의 명으로 1645년 상경하여 이듬해 생원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성균관에서 태학 재장(齋掌)에 천임(薦任)되었다. 1648년(인조 26) 8월 15일에는 전강(殿講)에 응시하여, 왕명으로 종이 4권(卷), 붓 4병(柄), 먹[墨] 3홀(笏)을 사급(賜給) 받았다. 이로써 백표의 문장과 경학(經學)이 성균관뿐만 아니라 향당(鄕黨)에서도 회자되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자 낙향한 후 관직에 뜻을 접고 향촌에 머물렀다. 백표는 ‘사물잠(四勿箴)’과 ‘경재잠(敬齋箴)’을 써서 벽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스스로를 살폈다. 또한, 주자와 퇴계의 학문을 강구하고, 여러 친족들과 함께 여씨향약을 본떠서 규례를 만들어 길흉사에 대비하였다. 또한, 여러 대가들의 예설(禮說)을 취하여 1책으로 엮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