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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650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기도 양주시
집필자 이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8년연표보기 - 『양주군지』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한국구비문학대계』1-4에 수록
채록지 경기도 양주시
채록지 경기도 의정부시
가창권역 경기도 양주시
가창권역 경기도 의정부시
성격 민요|가창 유희요|비기능 사설요|노동요
토리 경토리
출현음 솔·라·도·레·미
기능 구분 유희요|가창 유희요|비기능 사설요|노동요
형식 구분 두 마디를 단위로 나뉘는 유절형식
박자 구조 3소박 3박 혹은 3소박 4박 또는 8분의 10박 등 불규칙적인 박자
가창자/시연자 박태순|양순이

[정의]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시 가능동 지역에서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부르는 유희요.

[개설]

「시집살이요」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옛 시집살이를 고되게 겪었던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시댁 식구들의 야박한 태도에 대한 불만어린 한탄과 멀리 떨어져 자주 찾아보지 못하는 친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나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당시 양주군에 소속되어 있던 의정부읍 가능리 주민 박태순·양순이 등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81년 조희웅 외의 학자들이 조사, 정리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1-4권에도 「곰보 타령」, 「연정요」, 「시집살이요」 등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민요대관』에도 이윤정이 채보한 「시집살이요」 자료가 실려 있는데, 제보자 정보에는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주민 박태순으로 나와 있다.

[구성 및 형식]

「시집살이요」의 양순이 제보자는 시집살이의 고됨을 이야기하던 끝에 시집살이 노래를 구연하였는데, 이야기 도중 망각이 심하여 때때로 옆에 있던 박태순 제보자가 개입하여 도움을 주었다. 「시집살이요」는 대표적인 서사 민요 작품이다. 제보자는 시집살이 노래를 시작하였다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망각으로 인한 구연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야기로 대신 구연을 끝맺었다.

[내용]

「시집살이요1」

고추당추 맵다하니/ 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겄네 영죽것네/ 이시집은 못살겠네[제보자: 의정부읍 가능리 주민 박태순].

「시집살이요2」

올라가내 올고사리/ 너리가내 늦고사리/ 줌줌이 꺽어서루/ 바리바리 실어나려/ 밀집같은 해장작에/ 새별같은 챙기름에/ 보글자글 볶아서루/ 열두반상 받쳐노니/ 한접시가 남는구나/ 옳다요건 울어머니 반찬일세/ 꽃보구리 옆에끼고/ 꼬초밭에 들어서서/ 애동꼬추 따다가여/ 게눈같은 참기름에/ 보글자글 볶아서루/ 열두반상 받쳐노니/ 한접시가 남는구나/ 옳다요건 울어머니 반찬일세/ 꽃보구리 옆에끼고/ 가지밭에 들어서서/ 늙은가지 저쳐놓고/ 애동가지 따가가서/ 게눈같은 참기름에/ 보글자글 볶아서루/ 열두반상 받쳐노니/ 한접시가 남는구나/ 울어머니 반찬일세/ 뒷 붴문을 열치리니/ 새한마리 잡히는구나/ 새한마디 잡아서루/ 게눈같은 참기름에/ 보글자글 볶아서루/ 열두반상 받쳐노니/ 한접시가 남는구나/ 옳다이건 울어머니 반찬일세/ 아버님 아버님 일어나소/ 아침진지 잡수서요/ 예라이년 네나먹고 개나주고/ 떨떨이 나가거라/ 시어머님방에 들어서서/ 시어머님 시어머님/ 일어나소 일어나소/ 동창문에 해돋았오/ 아침진지 잡수세요/ 에라이년 네나먹구 개나주구/ 떨떨이 나가거라/ 임아임아 서방님아/ 일어나소 일어나소/ 동창문에 해돋았오/ 아침진지 잡수세요/ 아침진지 잡수시고/ 서당이나 가옵소서/ 에라이년 네나먹구 개나주구/ 떨떨이 나가거라/ 시누씨야 시누씨야 일어나소/ 동창문에 해돋았오/ 아침진지 잡수시고[이하 기억 상실로 중단됨. 뒷내용은 며느리가 나무 호미로 밭을 매다 점심을 먹으려 하니 시댁에서 삼년 묵은 보리밥 한 숟가락을 삼년 묵은 된장 한 숟가락과 함께 삼년 묵은 그릇에 붙여 주는 것을 보고 못살겠다 하여 집을 나온다. 산에서 만난 중에게 부탁하여 머리를 깎고서 친정으로 갔는데, 자기가 있을 적에 있던 친정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을 읊조리다가 올케들에게 정체가 발각되어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된다. 둘은 설움에 겨워 붙들고 우는데, 며느리는 여승이 되어 친정을 떠난다][제보자: 의정부읍 가능리 주민 양순이].

「시집살이요3」

아버님생전 내에모래/ 아버님생전 내에모래/ 뭐나뭐나 해여가나/ 뒷동산에 앞동산에/ 송기뜯어 송기절편해여가지/ 뭣에뭣에 담아가나/ 표주박에 담아가지/ 뭐나뭐나 덮어가나/ 자면지나 덮어가지/ 뭐나뭐나 입구가나/ 장삼이나 입구가지/ 뭐나뭐나 쓰구가나/ 송낙이나 쓰구가지/ 뭐나뭐나 신구가나/ 놋파리나 신구가지/ 뭐나뭐나 타구가나/ 앞동산에 뒷동산에/ 비루먹은 당나귀나타구가지.

「시집살이요4」

성님성님 사춘성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고추당추 맵다해도/ 시집보덤 더매울까/ 시집삼년 살고나면/ 미나리꽃이 다펴나고/ 장다리꽃이 다펴나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성님성님 사춘성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시집간지 사흘만에/ 부엌문을 열어보니/ 거미줄이 가뜩하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녹이하나 가뜩하구/ 아궁지를 디려다보니/ 각시풀이 가뜩하구/ 물독을 디려다보니/ 쟁개비가 다뜩하구/ 열두폭의 다홍치마/ 횃대 끝에 걸어놓고/ 들며나며 나며들며/ 눈물씻기 다썩었네.

「시집살이요5」

담방비단 남지불에/ 북비비단 동정받고/ 안옷그럼 닷냥팔이/ 것옷그럼 엿냥짜리/ 고름끝을 보니끄내/ 을조롱 조롱조롱/ 타기싫은 쌍가매야/ 가기싫은 시집이라/ 우리형제 다놔두고/ 나다니는데 자치도/ 없어지네/ 밤이면 한베개요/ 낮이면 한자리요/ 티미하다 어이살꼬/ 설마후설 하건마는/ 수재도한치 후롱같이/ 가르친다/ 어린동생 큰동생은/ 주역주역 눈물이라/ 늙은종 젊은종은/ 목을놓고 슬피운다/ 사촌종적 다모여서/ 니야무슨 한이있노/ 아부님은 대현서고/ 청청시야 좋은집에/ 열두마리 동봉말이/ 니야무슨 한이있노/ 생야라던 우리집에/ 일조에 이별하고/ 생부지자하고 남의집을/ 내집같이 가는구나/ 고마가에 동의하니/ 새각나절 다다르니/ 저므도록 무산눈물/ 저동리가 그동리가/ 사백비단 푸른후에/ 동서방에 들어가니/ 저모도록 지닌달이/ 각토증이 절로난다/ 찹쌀감주 냉냉체로/ 먹으라고 하는것을/ 조심많아 못먹겠네/ 안모하신 늙은이가/ 미느라도 잘도봤다/ 그래도 좋거니와/ 얼굴도 다복하다/ 녹의홍상 새닥들이/ 첩첩이 들어앉아/ 안모하신 늙은이가/ 첩첩이 들어앉아/ 하로밤을 자고난후/ 아버님도 하직하고/ 하인도 이별하고/ 숨은눈물 울고나서/ 물을닿고 들앉으니/ 거룩하다 시어머니/ 시수물을 손에들고/ 우지말고 분석객다시하고/ 오는손님 영접해라/ 옷구경 하러온다/ 농밑에 있는것을/ 가지가지 들쳐낸다/ 홧옷에 발린솔과/ 접옷에 창침손과/ 홋옷에 가끔새를/ 들쳐보며/ 즈그끄정 짓거리며/ 이사하다 도령수사/ 잘도했다/ 즈그끄정 오므리고/ 산들산들 웃는구나/ 사날있다 정주간에/ 들어가/ 시아버님 그건님이 기미몰라 헤메시냐/ 맛을보고 신거워도/ 조심이요/ 짭아도 근심이요/ 정주간에 들지마라/ 불티맞이 오라케지/ 방앗간에 들지마라/ 등기패 오른다/ 놀다가 심심그먼/ 상육이나 쳐봐라/ 어린아리 첫술이나/ 쳐줘라/ 비단처마 댕기거던/ 모시처마 입어봐라/ 암만섬겨도 남산/ 안보인다/ 한길에 가든손님/ 친정손님 오시는가/ 손님이 대문밖으로가니/ 손님도 날속인다/ 하인도 친정하인/ 오시는가/ 하인도 날속인다/ 하늘가에 저기러기/ 친정에 댕겨오는고/ 그러구로 친정가는/ 날이닥쳐/ 열두마리 도복받고/ 시아버님 비행서고/ 오던길로 호행하니/ 앞에모양 부지구나/ 뒤에모양 정에구나/ 어떡어떡 말만몰아타고/ 전에보던 동산닥쳤구나/ 아들이나 되었으면/ 한강물의 저고기 잡아서/ 부모님 반찬할것인데/ 여자몸이 되었으니/ 그리 못하겠네/ 사촌형제 다모이어/ 날마장 잔치로다/ 달마장 추지로다/ 한달을 머리빚고/ 한달은 잠을자고/ 청도입구 밀양박씨/ 반벌도 좋거니와/ 부모도 가지라고/ 남게도 준수하다/ 백사도 구비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승격되었다. 「시집살이요」 자료는 1978년 『양주군지』를 편찬할 당시 양주군에 소속되어 있던 의정부시 거주자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따라서 양주 지역 전체에 이와 같은 「시집살이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황]

다른 제보자들을 통해 박태순, 양순이 등과 같은 「시집살이요」 사설이 조사 사업의 일환이 아닌 가창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리는 전승 현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의의와 평가]

「시집살이요」에서는 과거 고된 시집살이를 감당해 내어야 했던 며느리의 심정이 각종 문학적 비유와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자유롭게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민요를 가창하는 민중들의 자족적인 동기를 찾을 수 있다. 또 일반적인 가창 유희요가 아닌 여러 가지 경우의 노동요의 하나로 불린다는 점에서 「시집살이요」의 기능요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시집살이요」는 서사 민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사 속에서 서사적인 구성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 속에서는 불합리한 현실을 형상화하여 드러내는데, 승려로 나서며 세상을 등지기까지 하는 결말 부분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저항이자 고발정신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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