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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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春卿 |
이칭/별칭 | 명중(明仲),석벽(石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손광순 |
출생 시기/일시 | 1497년 - 홍춘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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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2년 -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28년 - 식년문과 을과 급제, 저작, 정자, 수찬, 응교 |
활동 시기/일시 | 1536년 - 문과중시 급제, 사성, 보덕, 집의, 예조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541년 -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황해도 관찰사 |
활동 시기/일시 | 1547년 - 병조 참의 |
몰년 시기/일시 | 1548년 - 홍춘경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 후손 홍한표가 『석벽존고』 간행 |
거주|이주지 | 상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
묘소|단소 | 홍춘경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52번길 23-12[상수리 산55-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남양 |
대표 관직 | 황해도 관찰사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 고조할아버지는 사재감 직장 홍지(洪智)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홍경손(洪敬孫), 할아버지는 봉상시 부정(奉常寺副正)을 지낸 홍윤덕(洪閏德)이며, 아버지는 예문관 대교 홍계정(洪係貞)이다. 어머니는 언양 김씨(彦陽金氏)로 현감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고성군(固城君) 이맹우(李孟友)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언양 김씨로 김연(金演)의 딸이다. 자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홍천민(洪天民)·홍일민(洪逸民)·홍성민(洪聖民)이고, 두 딸은 이씨 소생이다.
[활동 사항]
홍춘경(洪春卿)[1497~1548]은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 3등으로 급제하고,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를 시작으로 수찬(修撰), 응교(應敎) 등을 지냈으며, 1536년(중종 31) 문과중시에 장원을 하여 사성(司成), 도승지(都承旨),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올랐다. 1540년(중종 35) 군기시정(軍器寺正)으로서 식년시의 시험관을 맡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좌승지, 한성부 우윤, 이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5년(인종 1) 이조 참의로 중종의 묘지(墓誌)를 쓸 때 정릉(靖陵)을 이장한 사연을 넣어 글을 지었다. 1547년(명종 2) 병조 참의를 지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홍춘경은 말년에 양주 상수리(湘水里)로 낙향하여 물가 적벽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석벽이라는 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김생체(金生體)를 잘 썼다.
[학문과 저술]
홍춘경이 쓴 시 「낙화암(落花岩)」이 전한다. 최근까지 이 시가 적힌 초서체 현판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 변의 낙화암 고란사에 걸려 있었다. 양주문화원에 탁본이 보관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파산하이석시(國破山河異昔時)[나라 망하니 산하는 옛날과 다른데]
독류강월기영휴(獨留江月幾盈虧)[홀로 강위에 달이 남아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다]
낙화암상화유재(落花巖上花猶在)[낙화암 위의 꽃은 아직도 남았으니]
풍우당년부진취(風雨當年不盡吹)[비바람 그 당시에 다 불어 떨어뜨리지 못하였나]
1932년 14세손 홍한표(洪漢杓)가 야사(野史)와 읍지(邑誌), 다른 사람의 전기 등에서 홍춘경의 글을 추려 간행한 『석벽존고(石壁存稿)』가 전한다.
[묘소]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55-1번지 남양 홍씨 묘역에 있다. 동남향에 쌍분이고 묘표, 망주석, 문인석 등을 갖추었다. 위쪽에는 고조할아버지인 홍지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