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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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虎臣 |
이칭/별칭 | 무백(武伯),정간(貞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정덕 |
출생 시기/일시 | 1506년 - 임호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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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8년 - 사마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31년 - 문과 병과 급제, 권지승문원 부정자 |
활동 시기/일시 | 1550년 - 장례원 판결사 |
활동 시기/일시 | 1551년 -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555년 - 호조 판서, 오위도총부 도총관 |
활동 시기/일시 | 1556년 - 지돈녕부사 |
몰년 시기/일시 | 1556년 8월 8일 - 임호신 사망 |
묘소|단소 | 임호신 묘 -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237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천 |
대표 관직 | 호조 판서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무백(武伯). 5대조는 임중선(任中善)이고, 고조할아버지는 임효돈(任孝敦), 증조할아버지는 임한(任漢)이며, 할아버지는 임유겸(任由謙), 아버지는 임추(任樞)이다.
[활동 사항]
임호신(任虎臣)[1506~1556]은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1년(중종 26)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역사에 재능을 보여 예문관 검열로 천거되었으며 이후 대교, 시강원 설서를 지냈다. 아버지 임추가 사신으로 중국에 갈 때 질정관(質正官)으로 따라갔다가 그곳에서 아버지가 죽자 관을 모시고 귀국하여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상을 마친 후 예문관 봉교로 복관하였으나 배척을 당해 황간 현령으로 나갔다. 이후 중앙으로 돌아와 병조 조랑, 형조 좌랑을 거쳐 사간원 헌납이 되었다. 이후 홍문관 교리, 이조 전랑으로서 시강원 문학과 필선을 겸하였다. 잠시 의정부 검상을 지낸 뒤 사인으로 승진하였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치며 언론 활동을 활발히 펼쳤고, 여러 차례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다. 1548년(명종 3) 어머니 상을 당하여 상복을 벗은 후인 1550년(명종 5)에 장례원 판결사를 두 번 역임하였다. 이때 옳고 그름을 명확히 밝혀 소송 사건을 처리하니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1551년(명종 6)에는 성절사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555년(명종 10) 자헌 품계가 더해졌고, 호조 판서와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였다.
임호신이 호조 판서를 지낼 때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고, 해안에는 왜구가 침략하여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였다. 재정 담당자였던 임호신은 세금을 거두는 일, 돈과 곡식을 내 주는 일을 합리적으로 빠르게 처리하여 위기를 잘 넘겼다. 하지만 오랜 격무로 병이 들어 창증(脹症)이 심해졌다. 1556년(명종 11) 2월 병이 깊어 사직서를 내고 한직인 지돈녕부사로 옮겼으나 그해 8월 8일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호신은 청렴하고 강직하며 겸손함까지 갖춘 모범적인 관리였다. 공적인 업무는 신중하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였으며 자신을 배척한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품지 않았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굽실거리거나 아부하는 일도 없었다. 임호신은 청렴결백한 성품 때문에 일찍이 염근리(廉謹吏)[생전에 청백리로 뽑힌 사람]로 천거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내가 염근(廉謹)이라는 두 글자를 더럽힐까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백리다운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도 전한다. 임호신이 호조 판서 때 병을 얻어 돈녕부의 수장인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옮겼다. 돈녕부는 왕의 외척이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왕실의 먼 친척을 대우하여 직함을 주는 기관으로, 책임자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이에 임호신은 일하지 않고 녹봉을 받을 수 없다며 봉급을 받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도 받지 말라고 일렀다. 절친한 친구였던 영의정 홍섬(洪暹)이 집에 문병을 가서 살림이 곤궁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자, 임호신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당시(唐詩) 한 권을 건네며 “나를 위해 시 한 편 읽어 주시오.”라고 주문하였다고 한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선비였던 것이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237번지 풍천 임씨 선산에 무덤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