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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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公益 |
이칭/별칭 | 사선(士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정덕 |
출생 시기/일시 | 1587년 - 이공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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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49년 - 이공익 사망 |
묘소|단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1-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형조좌랑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사선(士先). 증조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이억손(李億孫), 할아버지는 형조좌랑 이유정(李惟貞), 아버지는 영의정에 증직된 전성군(全城君) 이준(李準)이다. 어머니는 여산 송씨(礪山宋氏)로 절도사 송중기(宋重器)의 딸이다. 형은 이정익(李廷益), 동생은 이방익(李邦益), 이세익(李世益)이다.
[활동 사항]
이공익(李公益)[1587~1649]은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으로 얻은 벼슬]으로 별제(別提) 벼슬을 받은 뒤 돈녕 주부(敦寧主簿)로 승진하였고 호조 좌랑,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나가 진안현(鎭安縣)을 다스렸고 호조 정랑, 종친부 전첨에 이어 안성(安城), 인천(仁川) 두 읍을 다스렸다. 후에 정읍 현감과 파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공익은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는데, 이 때문에 몸이 상하여 1649년(인조 27)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1-1번지에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