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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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受說 |
이칭/별칭 | 천수(天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정덕 |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윤수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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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9년 - 사마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666년 - 윤수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10년 - 이조 참판에 추증됨 |
묘소|단소 | 묘소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파평 |
대표 관직 | 제용감 봉사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천수(天授). 아버지는 윤종복(尹宗福)이다. 큰아들은 동지중추부사 윤택(尹澤)이다.
[활동 사항]
윤수열(尹受說)[1602~1666]은 12세에 아버지가 죽어 성심껏 장례를 치렀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문과에는 탈락하였다. 부친을 여읜 후 출세의 꿈을 접고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비로서의 몸가짐과 학행이 뛰어나고 효심이 깊어 향촌에서 이름이 높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겨 기일을 앞두고는 10일 전부터 고기 반찬을 입에 대지 않았고, 기제(忌祭)가 있는 달에는 일절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오직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데만 마음을 썼다. 웃는 모습을 보려고 어머니 앞에서 어린아이 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만년에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으로 벼슬을 함]로 희릉 참봉이 되었고, 제용감 봉사로 승진하였으나 풍병(風病)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65세에 세상을 떠나 양주 읍치 북쪽 송라산(松蘿山) 북북서쪽을 등진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묘소]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10년(숙종 30) 큰아들 윤택이 동지중추부사에 오름에 따라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