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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짓는 기술은 일본 사람한테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D03030009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태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67, 8년도 배 만들 당시 그때는 목선이었어요. 지금은 FRP인데, 3척을 지어가 2척은 팔고. 지금은 배 한대 가지고 있어요. 오징어잡이 하는 데도 어가도 비싸고 비용도 많이 들고 그러죠. 기름값도 계속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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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된 오징어잡이 배

전에 우리 배 같은 경우는 18~20명씩 타고 했는데. 내가 먼저 시도를 해가 일본서 하마데회사, 자동조산기그거로 해가, 그게 울릉도 다 퍼져가, 지금은 한 2명 탑니다. 그 대신 선주들이 기계올리는 비용이라든지 시설비용이 많이 들지. 사람으로 하던 것을 기계로 하니. 18톤 지금정도는 2억5천에서 3억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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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이 잡이 필수품 자동조상기

목선은 주로 큰 배들은 후포, 구룡포에서 지었어요. 저동가면 아직 목선이 한 두 척이 있어요, 한 30톤 되는. 한 10~15톤까지는 울릉도에서 지었어요. 지금 현재 광장식당이 허허벌판이었다고. 거기는 도크시설 밑에 통나무 해놓고 울릉도 목수들이 지었어요. 주로 옆에 붙이는 거는 삼나무로 하고 안의 내부에는 용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용골이고. 그 당시 배 용어는 전부다 일본말이었어요, 가라이게 허리 중추역할 하는 거고, 갈비를 우리는 용골이라고 하는데 그거는 일본말로 소말또. 울릉도 배를 짓는 사람들이 주로 일본 사람한테 배웠기 때문에. 그래 안 쓸 수가 없는 거에요. 연장도 그렇고. 그래가 여서 지었어요. 안에 부속은 전부 울릉도 나무까 다했어요. 그때는 리어카도 없고 그래가 사람 손으로까 끌고 내려오는 거죠.

서치원 씨라고 있는데 그분은 우리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사실 우리 아버지도 목수였어요. 배도 짓고 그랬어요. 아버지가 솜씨가 좋아요.

울릉도 나무가 하도 좋아가, 본토에서 구룡포, 후포에서는 주로 소나무이지만, 여는 고래솔나무, 그거는 미요시라고 맨 앞에 하고 주로 용골 갈비뼈에 고래솔로 하고, 밑에 가라는 솔송나무루 했어요.

옛날에는 솔송나무가 아름드리로 있었는데……. 요즘은 제재소가 있지만, 그 당시는 전부다 톱 이런 거가 썰어가 깨는 거에요. 그래가 맨날 몇일 한 달을 썰어가, 그때만 해도 67~68년대 전부 그런 식으로 해가 울릉도 배를 지었어요.

후포, 구룡포에서는 전부 소나무를 쓰더라고. 그런데 소나무가 물에 들어가니 상당히 질기더라고. 마른 거 말고 생나무를 쓰는데, 특징이 있어요.

목수 3~4명이서 하는데 전부 인력으로 하다 보니 한 2개월 정도 걸려요. 하기 나름인데. 선주들이 잘 대접 안 해주면, 늦어지고 그러지. 한 60년도 초 같으면, 300만 원정도 들어요. 그 당시 쌀 한 가마가 3000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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