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D0000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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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호동 |
태하마을, 옛날에는 황토구미라고 불렀던 곳이다. 조선 태종~세종조 우산무릉등처 안무사 김인우를 시작으로, 조선후기의 삼척 영장, 월송 만호 등의 수토관, 그리고 1882년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태하마을이었다. 그들이 울릉도를 다녀간 흔적들이 바위에 새겨져 남아 있다.
태하마을은 울릉도 수호신을 모시는 성하신당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해신당은 일제강점기 시대 도동 등에 살던 일본 어민들이 와서 제사를 받들던 곳이기도 하다.
울릉도 개척 당시, 태하마을은 군청소재지였으며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태하천을 끼고 계단식 논이 길게 조성되어 있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경작여건이 좋은 곳이다. 그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인지라, 오징어 건조에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석양노을까지도 바닷바람과 함께 오징어를 말린다는 태하마을의 오징어는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그러나 태하마을은 바람이 찬 탓으로 항구로서의 여건이 좋지 않아 군청이 도동으로 옮겨가고, 일주도로가 마을에 인접하여 조성되었으나, 마을인구의 감소로 현재는 많이 쇠락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문화 및 자연자원의 잠재적 자원이 풍부하여 이를 활용할 경우 그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태하에는 약 250세대 550여명이 살고 있다. 과거에 논농사를 짓던 계단식 논에는 지역특산물인 약초를 주로 재배한다. 성하신당에서는 우산문화제의 일환으로 매년 제사를 지내고 풍농과 풍어 그리고 해상활동의 안녕도 기원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독교가 유입되어 기독교인이 주민의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삶의 모습도 많이 변화되었다. 마을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적에서 마을의 역사를 살필 수 있고, 주민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삶의 궤적과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의 참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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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산책로에서 조망한 태하마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