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E03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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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
집필자 | 신상구 |
농지가 부족한 산골에서 여옥란 역시 선질꾼이 떠난 자리에서 개간한 농지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여옥란이 부르는 오늘날 화전을 ‘산전’이라 부른다. 갈아 먹을 땅이 부족하니 해마다 산에 불을 놓아 산전을 일구었다. 산전은 개인 산에서는 할 수 없고 국유림에서만 가능하였다. 국유림도 산전은 국가에서 금지해 놓은 일이니 몰래 몰래 숨어서 행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먹고 살기 힘든 때이니 산에 불을 놓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때였고, 그렇게 세상의 단속을 피해가며 산전을 일구었다.
산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생활이 되지는 않았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바꾸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래도 지천에 깔린 것이 나무 장작과 수껑(숯)을 머리에 이고 죽변과 울진장에 내다 팔았다. 선질꾼과 소장수, 나그네들이 지났던 그 길을 여옥란은 생활을 위해서 장작과 숯을 이고 울진장까지 걸어갔다. ‘지금이야 길이 좋아져서 차도 다니지만 그때는 길이 좁았어’라고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 그녀가 다녔던 길을 ‘토깽이길(토끼길)’이라 표현한다. 토끼가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길이었음을 그렇게 좁은 길이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되었다. 장평 인근 계곡에서 구웠다고 전해지는 숯을 두천리의 아낙네들이 이고 울진장에서 팔고 남은 이문을 챙겼는데, 이른 새벽 죽변과 울진장을 향하면 대낮이 되어야 도착했다. 숯을 팔리지 않으면 다 팔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겨우 팔리고 나면 죽변항에 들러 오징어 내장을 얻어서 돌아왔다. 울진장까지 가는 길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돌다리만 열두 개를 건너야 했고, 겨울에 얼어붙은 돌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지면서 숯을 물에 빠뜨리기가 수차례였다. 장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숯이 팔리기만을 기다려야만 했고, 그렇게 벌은 돈은 무서운 시어머니 때문에 한번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었다.
70년대 말에는 새마을운동 부역을 행하였다. 새벽별을 보면서 북면으로 괭이나 삽을 들고 가서 새마을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마을일을 행하는 것도 여옥란의 몫이었다. 길을 넓히고 다리를 놓는 등 그렇게 받은 일당이 밀가루 한 줌이었으며, 그렇게 부역의 몫도 고스란히 여옥란이 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