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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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十二嶺- |
영어의미역 | Peddler's Songs and Playi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과 내륙 지방의 장시를 오가던 보부상들이 십이령을 넘나들며 부르던 노래와 놀이.
[개설]
십이령바지게꾼이라 하면 바지게라는 지게에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 고기, 미역 등 해산물을 싣고 흥부장(興富場)[현재 북면 부구리]에서 출발하여 십이령[쇳칫재, 세고개재, 바릿재, 셋재, 너삼밭재, 젖은텃재, 작은넓재, 큰넓재, 꼬채비재, 멧재, 배나들재, 노룻재 등] 12고개를 넘어 소천, 춘양, 내성 장을 보기 위해 200여 리를 2~3일을 걸려 걷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지게꾼[등짐장수]들은 날이 저물면 길 옆 외딴 주막집에서 숙박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도박 등 오락도 하였다. 주막집에 주인이 없으면 빈 집에서 쉬면서 솥단지에 밥을 지어 먹고 다녔다 한다. 이들이 길을 가면서 잠깐 쉴 때는 지게를 진 채 짤막한 지게막대기로 지게 맨 아래 등태에 바치고 서서 쉬기 때문에 선길꾼 혹은 선질꾼이라고도 불렀다.
[연원]
십이령바지게꾼놀이는 2007년 지방문화원 중심의 노인 참여 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 울진군의 정체성을 담은 차별화된 놀이를 찾고자 십이령바지게꾼놀이를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있던 이규형 씨의 도움으로 당시 등짐장수[보부상]들 중 생존하고 있는 이들의 노래를 채록하고 고증한 뒤 이를 놀이로 만들었다.
[놀이도구 및 장소]
십이령바지게꾼놀이는 보부상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3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특별한 물품도구와 장소는 필요하지 않으며, 개인별로 소금 또는 미역이라 적힌 바지게를 각각 메고 있으면 된다.
[놀이방법]
바지게를 진 보부상들은 울진의 흥부장을 출발하여 두천 주막마당을 지나 춘양장으로 도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두천 주막마당에서는 보부상들의 멍석말이를 재현하고, 십이령고개를 넘는 동안 힘든 과정을 보여주는 솥단지 밥해먹기를 행하기도 한다. 놀이는 일렬로 줄을 지어 고개를 넘어가는 보부상들의 모습에서 시작하는데, 풍물패들의 소리에 맞추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은 언제 가노/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후렴)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십이령바지게꾼은 영동의 어물 등을 영서의 곡물, 담배 등과 물물교환하는 생산물 유통 수단에 큰 역할을 해 온 보부상들이다. 당시 불편했던 교통수단에도 불구하고 물자 유통을 담당했던 바지게꾼의 모습들이 교통이 편리한 오늘날에는 역사적인 전설로만 이어진다.
십이령바지게꾼들은 통솔자의 감독을 받아가며 단체 생활의 규율을 지켰다. 북면 두천리 바릿재 밑에 그 당시 내성행상접장(內城行商接長) 정한조(鄭漢祚) 불망비(不忘碑)와 내성반수(內城班首) 권재만(權在萬) 불망비가 세워져 있어 이들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현황]
십이령바지게꾼놀이는 80년대 중반 성류문화제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현재는 근남면 노인회 회원들이 이를 전수하고 있으며, 울진문화원에서는 이에 대한 학술적 조사를 위해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하였다. 현재는 평해 남대천 단오제와 울진대게축제 등 울진의 주요 행사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2007년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일산 호수공원 내 꽃 전시관에서 열린 2007년 실버문화사랑축제에서는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공연 명으로 체험 프로그램 특색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