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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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湘大師 |
영어의미역 | Buddhist Monk Uisang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황정숙 |
[정의]
신라시대 경상북도 울진에 불영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화엄종의 개조.
[가계]
속성은 김씨. 아버지는 김한신(金韓信)이다.
[활동사항]
644년(선덕여왕 13) 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얼마 뒤 중국으로 가기 위하여 원효(元曉)와 함께 요동(遼東)으로 갔으나,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혀 정탐자로 오인 받아 수십 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왔다. 661년(문무왕 1) 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처음 양주(揚州)에 머무를 때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그를 관아에 머무르게 하고 성대히 대접하였다. 얼마 뒤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지엄(智儼)을 청하였다. 지엄은 전날 밤 꿈에 해동(海東)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더니 중국으로 와서 덮었는데, 그 위에 봉(鳳)의 집이 있어 올라가 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摩尼寶珠)의 밝은 빛이 멀리까지 비치는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의상을 특별한 예(禮)로 맞아 제자가 될 것을 허락하였다.
당나라에 8년 동안 머무르며 지엄에게서 화엄을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낙산사(洛山寺) 관음굴(觀音窟)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이때의 발원문인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은 그의 관음 신앙을 알게 해주는 261자의 간결한 명문이다. 그 뒤 676년(문무왕 16)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기까지 화엄사상을 펼 터전을 마련하고자 전국의 산천을 두루 편력하는 한편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의상 이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 화엄 사상이 알려졌지만, 화엄 사상이 크게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의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이른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인 부석사, 미리사(美里寺), 화엄사(華嚴寺), 해인사(海印寺), 보원사(普願寺), 갑사(甲寺), 화산사(華山寺), 범어사(梵魚寺), 옥천사(玉泉寺), 국신사(國神寺)를 비롯하여 삼막사(三幕寺), 초암사(草庵寺), 홍련암(紅蓮庵), 대흥사(大興寺) 등을 세운 것으로 전하여 온다.
울진 불영사 또한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여 온다. 유백유가 쓴 「천축산불영사기(天竺山佛影寺記)」에 의하면, 의상은 651년(진덕여왕 5) 불영사를 창건하고 동경[지금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해변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으로 들어와서 해운봉에 올랐다. 그는 북쪽을 바라보고 감탄하여 서역 천축산을 바다를 건너 만들어 놓은 듯하며, 또한 시냇물 위에는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비치니 더욱 기이한 곳이라 하였다.
그리고 하류로 내려와 금탑봉에 오르니 그 아래에 독룡이 사는 못이 있어 의상이 용에게 설법하여 사찰 지을 땅을 베풀기를 청하였으나 용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의상이 주술을 부리자 용은 산에 구멍을 내고 돌을 깨뜨리며 사라졌다. 그 후 의상은 사찰을 세우기 위해 못을 메우고, 동쪽에 청련전(淸蓮殿) 세 칸과 무영탑(無影塔) 한 기를 건립하였으며, 땅을 비보하는 뜻으로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사찰들이 모두 의상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믿기에는 문제가 있으나, 의상과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음은 틀림없다. 의상대사는 702년(성덕왕 1) 세수 78세에 입적하였다.
[학문과 사상]
의상의 교화 활동 중 가장 큰 업적은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것이다. 당시에 아성(亞聖)으로 불린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 10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고, 『송고승전』에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 그리고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隨錄)』에 이름이 나타나는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들이었다. 이들을 비롯하여 의상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의상은 황복사에서 이들에게 「법계도」를 가르쳤고, 부석사에서 40일간의 법회를 열어 일승십지(一乘十地)에 대하여 문답하였으며,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화엄경』을 90일간 강의하였다. 지통의 「추동기(錐洞記)」, 도신의 「도신장(道身章)」, 법융의 「법융기(法融記)」, 진수의 「진수기(眞秀記)」 등은 모두가 의상의 강의를 기록한 문헌들이다.
[저술 및 작품]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1권,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 1권,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1권, 「백화도량발원문」 1권 및 최근 발견된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