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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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益漸棉作紀念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221-4 |
시대 | 근대/일제 강정기 |
집필자 | 김용만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329년 - 문익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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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398년 - 문익점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35년 - 문익점 면작 기념비 건립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221-4 |
성격 | 비석 |
양식 | 비석 |
관련 인물 | 문익점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총고 : 342㎝|비신 : 199㎝ |
크기(폭) | 45㎝ |
소유자 | 의성군청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문익점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는 비.
[개설]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다가 고려로 귀국할 때 종자(從者) 김룡(金龍)을 시켜 목화 몇 송이를 딴 후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겨우 한 그루만을 살릴 수 있었으나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가 퍼지도록 하였다.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있을 때, 의성군의 지세가 중국의 금주성(錦州城)과 흡사하여 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서 재파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의 자손이 의성 땅에 목화 재배를 시작한 경위와 목화를 처음 원나라에서 수입해 온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자 의성 목화 재배지에 탁암 김도화가 비문을 짓고 김희국이 글씨를 쓴 문익점 목면 유전비를 세웠다. 또한 1935년에는 현 위치인 금성면 대리리에 별도의 기념비인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면작을 독려하는 시책에 따라 세운 것이라고 한다.
[건립 경위]
문익점 면작 기념비는 1935년 김서규 경상북도지사가 문익점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위치]
문익점 면작 기념비는 의성 탑리 간 국도변의 금성산 고분군 근처에 있다.
[형태]
비석은 총 높이 342㎝, 비신(碑身) 199㎝, 폭 45㎝로 삼층의 기단 위에 촛대와 같은 비석을 세웠다.
[금석문]
비석에는 ‘충선공 부민 후 강성군 삼우당 문익점 선생(忠宣公富民侯江城君三憂堂文益漸先生)’이라고 종서로 쓰여 있고, 기단에는 ‘면작 기념(棉作記念)’이라 횡서로 쓰여 있다.
[현황]
비석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일제 강점기에 세운 비석으로 왜색이 짙어 개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