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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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鳴皐里延慶墓封標刻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 산3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는 연경묘(延慶墓) 수호 관련 봉표(封標).
[개설]
명고리 연경묘 봉표 각석은 순조의 세자로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翼宗), 즉 효명 세자(孝明 世子)의 묘인 연경묘(延慶墓) 수호에 필요한 향탄 생산을 위해 목재를 보호할 목적으로 새긴 봉표(封標)이다. 한편 의성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에는 세종의 아들 연경의 무덤을 위해 새긴 봉표라고 한다.
[건립 경위]
연경묘는 조선 순조의 아들이자 세자를 지냈던 익종의 무덤이다. 생존 시 효명 세자였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으며, 훗날 아들 헌종(憲宗)에 의해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추존되면서 연경묘에서 수릉(綏陵)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본 각석이 새겨진 것은 효명 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기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본 각석은 세종과 무관한 익종의 무덤인 연경묘에 사용되는 목재를 제공하는 산에서 함부로 벌목을 금지하는 봉표이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 산36에 자리하고 있다. 명고리 옥곡동 앞을 지나는 명고길을 따라 북으로 1㎞쯤 가면 길옆에 우뚝 솟은 검은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형태]
높이는 10m, 폭이 5m가 넘는 큼직한 자연 암석을 깎아 세운 듯한 절벽에 우에서 좌로 세로로 글자를 새겼다. 비교적 널찍한 바위 면에 큰 글자로 봉표를 새기고, 그 우측에 봉표 조성 당시 관련 인물을 역할과 함께 새겨 놓았다. 연(延) 자의 크기는 19.5×16.8㎝이다.
새겨진 글자는 “연경묘 향탄산인계하성산옥곡암 봉표(延慶墓 香炭山因啓下城山玉谷巖 封標)”이다. 그리고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갑오칠월 일 봉심(甲午七月 日 奉審)으로 추정된다. 연경묘를 익종의 것으로 추정한다면 갑오년은 1834년이 될 것이다. 그 오른쪽에 봉표의 일을 맡고 관리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지만, 몇몇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본묘(本墓) 감신(監臣) 김창우(金昌祐)
감동(監董) 이정재(李政在)
○○ 안대복(安大福)
본묘수위군(本墓守衛軍) 김(金)○○
축보(築洑)○○ 김(金)○○
본조전향사집리(本曺典享司執吏) 김종휴(金宗休) 근서(勤書)
풍헌(風憲) 박상윤(朴尙允)
[의의와 평가]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부친으로 훗날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 세자의 무덤인 연경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향탄을 확보할 목적으로 나라에서 특별히 지시하여 봉표를 하였다는 데서, 당시 세자에 대한 국가적 의전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관련 인물로 본묘 감신 김창우 이하 여러 인물들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을 밝히고 있어 조선 후기 의례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