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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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孝全 |
이칭/별칭 | 영초(詠初),기천(沂川),윤효선(尹孝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영성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영초(詠初), 호는 기천(沂川), 초명(初名)은 윤효선(尹孝先). 증조할아버지는 조광조의 문인으로 아산 현감을 지낸 윤관(尹寬)이고, 할아버지는 윤호(尹虎), 아버지는 윤희손(尹喜孫)이다. 어머니는 예안 이씨(禮安李氏)로 이수(李琇)의 딸이다. 아들은 백호(白湖) 윤휴(尹鑴)이다.
[활동 사항]
윤효전(尹孝全)[1563~1619]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생인 행촌(杏村) 민순(閔純)과 이황의 제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등에게 수학하였다. 당색은 북인으로 후일 소북(小北) 계열에 속하였다. 음서(蔭敍)로 벼슬길에 나가 현감을 지냈다. 1605년(선조 38)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1611년 5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순창 군수를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임해군(臨海君)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사 공신(翼社功臣) 2등 대원군(帶原君)에 책록되었다. 이후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유폐를 반대하다가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과 갈등을 빚었고 1614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 1617년(광해군 9)에는 경주 부윤으로 밀려났다가 재직 중이던 1619년(광해군 11)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서경덕을 존숭하여 서경덕의 문집인 『화담집(花潭集)』의 간행을 주관하였다. 평소 서경덕에 대하여 “서경덕의 저술 1권은 다른 학자의 10권의 책에 비길 만하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묘소]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백호리에 안장되었다가 2009년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의 선영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과거에 폐모론(廢母論)에 관여했다 하여 관작이 추탈되고 공신록에서 삭제되었다가, 1629년(인조 7)에 아들 윤휴의 신원(伸寃) 상소로 복관되고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