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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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巖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앵화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서 원통산 암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수많은 목숨을 구해 준 암굴」은 정유재란 때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원통산의 바위굴에 숨어 왜적의 무자비한 칼날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마을 사람들의 피난담이다. 순창읍에 있는 원통산은 산 모양이 원숭이가 과일을 따먹으러 올라가는 형상이라는 뜻의 ‘원통과목(猿通果木)’을 줄여서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원통산 암굴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3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하의 221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순창읍과 인계면, 팔덕면 경계 지점에 원통산이라는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 원통산에는 300~400명이 들어갈 만한 큰 바위굴이 있다. 정유재란 때 왜적이 물밀 듯이 순창에 밀어닥치자 백성들은 자기 목숨 구하기에 바빠 부모 형제를 내버리고 피난을 갔다. 백성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는데 대부분이 왜적에게 몰살당했으나 원통산으로 피한 사람들은 무사하였다. 바로 이 암굴에 숨은 덕분이었다. 전란이 끝나자 순창 백성들이 암굴에 산신제를 올리려고 원통산에 올라갔는데 도무지 암굴을 찾을 수 없었다.
[모티프 분석]
「수많은 목숨을 구해 준 암굴」의 주요 모티프는 ‘피난’, ‘명당’ 등이다. 원통산 암굴로 피난하여 순창 읍민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암굴은 명당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명당은 부(富)의 축적, 자손 발복(發福)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록(鄭鑑錄)』 등의 도참서에서 거론되는 십승지(十勝地)의 성격과 같은 생명 보존과 피난처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