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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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磨今堤大谷-申參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집필자 | 박정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마금제의 신 참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마금제 대곡과 신 참봉」은 검약 생활로 재산을 모은 신형모가 자손의 부귀를 위하여 자신이 일 년 후에 죽을 것을 알고도 명당자리에 아버지의 묫자리를 써서 자손을 영화롭게 살도록 했다는 인물담이자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238~239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우부면 동계리 마금제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신형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신씨의 집안은 가난하였다. 신씨는 돈을 모을 요량으로 십 년간 죽을 먹기로 가족들과 약속을 하였다. 삼사 년쯤 되었을 때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오셨다. 며느리는 아버지가 오셨기에 밥을 지어 대접하고 온 가족이 밥을 먹었다. 친정아버지가 떠나신 후에 신씨는 가족들이 밥을 먹었으니 지나온 삼 년은 무효이고 지금부터 십 년을 죽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한참 동안 먹을 쌀을 독에 채워 놓고도 지정된 이상의 쌀을 절대로 더 주지 않았다. 이렇게 지독할 정도로 검약 생활을 한 덕분에 신씨는 치부를 할 수 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신씨는 마금제 밑에 있는 논에 일 년 농사 준비를 위하여 논을 살피러 가고 있었다. 마금제 언덕에 도착하여 보니 웬 노인이 탈진하여 쓰러져 있었다. 신씨가 다가가 보니 인사불성이었다. 신씨는 천성이 착하고 남의 일이라도 자기 일 못지않게 살피는 사람인지라 노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와 정성껏 간호하였다. 쓰러져 있던 노인은 곡성군 통명산에 있는 암자에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 순창에 있는 회문산이 명산이라는 말을 듣고 답산(踏山)을 하러 왔다가 명지에 도취되어 다니다가 탈진하여 쓰러진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자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회복되었다. 노인은 거듭 감사를 하면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되겠느냐고 하였다. 신씨는 아버지를 초분 자리에서 아직 장사를 지내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 “지사(地師) 어른께서 답산하고 오신 곳을 저에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그곳에 장사하면 자손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나 그곳에 장사를 들인 장자가 죽게 됩니다.” 하였다. 신씨는 자손이 잘 되어 번창한다면 나 하나 죽는 것이 뭐가 두렵겠느냐고 하면서 그 자리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지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생명의 은인이 요청하는 것이요, 또 그 효성이 지극하여 승낙하고 택일하여 그 자리에 장사하도록 하여 주었다.
지사의 말대로 신형모는 일 년 후에 죽었고, 그의 아들은 건능 참봉(健陵參奉)이 되었다. 신 참봉은 순창에서 몇 백 석을 받는 부자였고, 그의 손자는 일본으로 유학하여 공부한 후에 돌아와 크게 성공하였다. 지사의 말이 사실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모티프 분석]
「마금제 대곡과 신 참봉」의 주요 모티프는 ‘자신 희생’, ‘명당 발복’ 등이다. 지관을 살려준 보은으로 신씨는 아버지의 명당 묫자리를 얻었으나 그 명당자리는 곧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씨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자손의 부귀영화를 위해 기꺼이 아버지의 묫자리를 그곳에 쓰게 된다. 명당 설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자손의 번창, 부귀영화에 대한 희구,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에 대한 보상 등이 이 이야기 속에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