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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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佛敎淳昌敎堂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창1길 1-11[남계리 70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옥영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원불교 광주전남교구 소속 교당.
[개설]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의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26세 때인 1916년에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닫고 창립하였다. 소태산 박중빈은 이재철·이순순·김기천·오창건·박세철·박동국·유건·김광선·송규 등과 근검저축·허례 폐지·미신 타파·금주 단연·공동 출역 등의 새 생활 운동인 저축 조합 운동과 소태산 박중빈의 탄생지인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지금의 백수읍] 길룡리 앞의 갯벌을 막아 농토를 개간하는 간척 사업 영산 방언 공사,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살리기 위한 서천 기도(誓天祈禱)인 혈인 기도(血印祈禱)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기틀을 닦았다.
1919년 늦가을에 소태산 박중빈은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의 봉래 정사(蓬萊精舍)로 들어가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제정·구상하였다. 이후 1924년에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하고 불법 연구회라는 임시 교명(敎名)으로 교화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불법 연구회라는 명칭은 1948년에 원불교라는 정식 교명을 제정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소태산 박중빈은 불법을 주체로 하되 종교 개혁·인간 개혁·사회 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를 내걸고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 무시선 무처선(無時禪無處禪), 동정일여 영육쌍전(動靜一如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 등의 정신으로 생활 종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원불교는 국민 계몽과 농촌 생활 향상에 주력하였다. 1943년 6월 1일에 소태산 박중빈이 53세로 열반하고 수제자 정산(鼎山) 송규(宋奎)[1900~1962]와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종법사가 뒤를 이었다.
원불교는 최고 통치자를 종법사라 하고, 최고 결의 기관으로 수위단회, 중앙 집행 기관으로 교정원, 중앙 감찰 기관으로 감찰원을 두어 교단을 통치하고 있다. 1992년 7월 기준으로 출가 교역자가 1,400여 명이며, 훈련 기관 11개소와 문화 기관 8개소, 자선 기관 42개소, 산업 기관 9개소 등을 갖추었다. 1960년대부터 종교 연합 운동을 제창하고 있으며, 미국·일본·캐나다·독일·오스트레일리아·카자흐스탄·프랑스 등지에도 20여 개의 교당을 가지고 있다.
[설립 목적]
원불교 순창 교당은 대종사 박중빈이 주창한 정신개벽 운동을 선양하고, 저축 조합을 조직하며, 근검절약과 금주 금연, 허례허식 배격으로 자립 경제를 세우고, 영세 농민으로 하여금 영육쌍전의 개척 정신을 일깨워 순창군 지역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4년에 원불교 관촌 교당 교무 이지일이 권일경[현재 원불교 담양 순교]의 주선으로 당시 순창군 순창면 가잠리 차지은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한 달에 두 번씩 출장 법회를 시작하면서 순창군에 일원의 법음이 전해지고, 원불교의 종교 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원불교의 종교 이념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이념 아래 순창군 지역의 현실적 상황에 맞는 종교를 통해 물질적 개벽과 정신적 평안함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변천]
6·25 전쟁으로 1년간 쉬었다가 이듬해에 교도들을 다시 규합하여 교도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법회를 보아 왔다. 초대 교무 권우연이 부임하여 여러 교우들이 뜻을 모아 교당을 순창 읍내로 옮겼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였다. 이에 권순교·임효순·선정모 등이 교당 신축에 앞장서서 1954년 11월에 초가집을 마련하였다. 활기를 찾은 교당은 점차 신도가 늘어 법당 신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1957년에 법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958년 봄에 법당을 준공하였다. 1971년에는 교무 최규학이 순창군에 부임하였고, 자금난으로 공사가 지연되던 법당을 많은 교도들의 염원과 협조로 1973년 9월에 신축하여 기공식을 가졌다. 이후 1974년 5월 3일에 138.84㎡[건평 42평]의 법당 봉불(奉佛) 낙성식을 가졌다. 원불교 순창 교당 외에 1999년 8월 30일에는 원불교 동계 교당이 봉불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원불교 순창 교당은 원불교의 이념인 종교 개혁·인간 개혁·사회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개소 초기부터 지역 주민들과 어려움을 함께하고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순창군은 지역적으로 산간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도 다문화 가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원불교 순창 교당은 일찍부터 이러한 다문화 가족들이 자주력·자활력·자립력을 세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과 방문 교육, 아이 돌보미 등 다방면의 지원을 하였다. 또한 지역 사회의 소외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황]
2014년 현재 원불교 순창 교당은 지역적 특성에 맞는 종교 활동을 전개하여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다문화 가족을 지원하는 데 뜻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일찍부터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원불교 교무에 의해 순창군 다문화 가족 지원 센터가 운영되었다. 2012년에 순창군 청소년 센터로 다문화 가족 지원 센터가 이전하여 현재 교무 고재영이 센터장으로 있다. 다문화 가족 지원 센터에서는 다문화 가족들이 잘 정착하고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을 세워서 진정한 순창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고, 안정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소외된 지역 사회 주민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