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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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鼎基 |
이칭/별칭 | 정립(定立),최락당(最樂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정의]
조선 시대 순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정립(定立), 호는 최락당(最樂堂). 양사민(楊士敏)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여즙(楊汝楫)이고, 아버지는 증승정원 좌승지 양문거(楊文擧)이다.
[활동 사항]
양정기(楊鼎基)는 성품이 온후하고(溫厚)하고 용모가 단장(端莊)하며, 말을 하는 동안 웃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부모를 섬김에 지극히 효를 다하였고, 조금도 뜻을 어긴 일이 없었다. 늙어서까지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었고, 각종 유가 경전과 역사서를 자세히 풀이하였다. 생활면에서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아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글로 쓴 것은 모두가 정심호박(精深浩博)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사우(祠宇)를 세우자는 논의가 있어서, 순창군 인계면 서룡(瑞龍)에 자리를 잡고 건물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으나, 조정에서 취소한다는 명이 내려져 중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