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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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時晉妻烈女康津金氏 |
이칭/별칭 | 양시진 처 열녀 도강 김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77년 -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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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50년 -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53년 -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 정려 건립 |
출생지 |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 출생지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
정려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강진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가계]
본관은 도강(道康). 아버지는 별제(別提) 김대립(金大立), 남편은 구음공(龜陰公) 양시진(楊時晉)[1573~1615]이다.
[활동 사항]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1577~1650]는 1577년(선조 10)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깊이 수학하여 일찍이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양시진에게 출가한 후에는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셨다. 남편이 광해군 때 무고로 함흥으로 유배 가다가 철령 너머 덕산역(德山驛)에서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하늘과 햇빛을 보지 않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또한 3년이 지난 후에도 어육(魚肉)을 먹지 않았다. 그 뒤 인조반정 후 남편의 무고가 벗겨지고 신원 복관되자 「하청송(河淸頌)」을 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하청혜성군출(黃河淸兮聖君出)[황하의 물이 맑으니 어진 임금이 나왔으며]
설인원혜건곤활(雪人寃兮乾坤闊)[원한을 풀어 주니 천지가 넓어졌다]
이 글을 이귀(李貴)가 인조에게 올렸더니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인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남편 상을 치른 것처럼 하였는데, 삼년상을 넘기지 못하고 1650년(효종 1)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653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1761년(영조 37) 백수(白水) 양응수(楊應秀)[1700~1767]가 지은 「증숙부인 김씨 정려 중수기(贈淑夫人金氏旌閭重修記)」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