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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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惟誠 |
이칭/별칭 | 중실(仲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문관.
[가계]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중실(仲實). 할아버지는 화릉 참봉을 지낸 조여옥(趙汝玉)이고, 아버지는 성균 생원 조수억(趙壽億)이다. 어머니는 조원길(趙元吉)의 후손인 조구(趙球)의 딸이다. 처는 해주 오씨이고, 재취는 순천 박씨이다. 후사는 없다.
[활동 사항]
조유성(趙惟誠)[1526~1575]은 1526년(중종 21) 3월에 순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외가에서 자랐다. 1548년(명종 3) 부친상을 당했을 때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상례를 치렀다. 1555년(명종 10) 봄에 식년 문과 갑과로 급제하였다. 상의원 직장, 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 등을 시작으로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좌랑 및 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정언, 헌납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장성 현감, 어천 찰방, 경상도 도사, 고부 군수, 금산 군수, 나주 목사를 역임하였다. 1567년(선조 2)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으며, 1573년 장령이 되었다. 대각(臺閣)에 있을 때 일을 논함에 흔들림이 없이 바른말로 직언하였다. 성품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몸차림이나 행동을 스스로 지키면서 가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금산의 군수로 재임하면서 전염병에 걸려서 1575년(선조 8) 4월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