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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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薛弘允 |
이칭/별칭 | 공신(公信),청취정(淸翠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범호 |
출생 시기/일시 | 1515년 - 설홍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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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83년 - 설홍윤 사망 |
출생지 | 설홍윤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옥천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공신(公信), 호는 청취정(淸翠亭). 증조할아버지는 절의로 이름이 있는 설순조(薛順祖)이다.
[활동 사항]
설홍윤(薛弘允)[1515~1583]은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환여 승람(朝鮮寰輿勝覽)』 순창군 편에 의하면,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학문을 하였으며, 중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부귀영화에 집착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기로 다짐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가 여러 번 벼슬에 나갈 것을 권하였지만 “뜰에 복숭아가 아직 익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양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설홍윤은 많은 선비들과 더불어 경전을 논하면서 학문에 정진함에 부지런하였으며,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고상한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조선 환여 승람』에 유고집(遺稿集)이 전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