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48 |
---|---|
한자 | 淸河逸稿 |
이칭/별칭 | 『청하 일고 부 사락당 일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형성 |
간행 시기/일시 | 1962년 - 『청하 일고』 간행 |
---|---|
소장처 | 원광 대학교 도서관 -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 460[신동 272] |
성격 | 고도서|문집 |
저자 | 옹몽진(邕夢辰)|옹달행(邕達行) |
권책 | 불분권(不分卷) 1책 |
행자 | 11행 24자 |
규격 | 22.7×15.0㎝[반곽] |
어미 | 상흑어미(上黑魚尾) |
[정의]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인 옹몽진과 옹달행의 시문집.
[저자]
옹몽진(邕夢辰)[1518~1584]의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응룡(應龍)·응기(應祈), 호는 청하(淸河)이다. 전라북도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명종 11)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명종 22) 판관을 거쳐 음성 현감에 부임하였다. 음성 현감 시절 오랜 폐단을 바로잡고 선정을 펼쳐 칭송을 받았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자 고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향교 앞에 유애비(遺愛碑)를 세웠다. 후에 벼슬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옹달행(邕達行)[1570~?]의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사임(士任)이다. 옹몽진의 아들로 순창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3등에 책봉되고 병자호란 때 세운 공으로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에 제수되었다. 효행이 뛰어나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편찬/간행 경위]
1962년에 후손 옹경원(邕景源)이 선조의 유묵을 모아 『청하 일고(淸河逸稿)』를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1962년에 권순명(權純命)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는 배성수(裵聖秀)가 쓴 발문이 있다.
[형태/서지]
『청하 일고』는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사락당 일고(四樂堂逸稿)』가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상흑어미(上黑語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2.7×15.0㎝이다. 1면 11행에 1행의 자수는 24자이다. 원광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청하 일고』는 시(詩) 13수, 기(記) 1편, 문(文) 1편, 부록 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순창 적성원(赤城院)을 묘사한 작품이 있고, 어사 김계(金啓)[1528~1574]와 수창(酬唱)한 작품, 소상 팔경(瀟湘八景)이 그려진 병풍을 보고 지은 작품도 있다. 「유광덕산기(遊廣德山記)」는 충청남도 천안 광덕면과 아산 송악면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오른 광덕산을 유람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와 충암(冲庵) 김정(金淨)[1486~1521]이 유람하였던 것을 상기하기도 하였다. 부록 4편은 옹몽진의 행의(行誼)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사락당 일고』는 시 4수, 만(輓) 1편, 서(序) 1편, 서(書) 1편, 부록 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감회」 4수는 자신의 평상시 소회를 읊은 작품이고, 1629년(인조 7)에 지은 「기사보서(己巳譜序)」는 옥천 옹씨 족보에 대한 서문으로 옥천 옹씨 가문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동향인 양시진(楊時晉)[1573~1615]에게 보낸 서한은 안부를 물은 것이고, 부록 2편은 옹달행의 행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