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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614
한자 券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숙정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의 기생들을 포함한 조선 전역의 기생 조합.

[개설]

조선 시대의 교방(敎坊)과 관기(官妓) 제도는 1907년부터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1908년 9월 장례원에서 관리하던 기생들을 경시청(警視廳)에서 관리하고 기생들에게 자유 영업을 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후 1916년 3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일본식 유곽 제도를 공포하면서, 기생도 허가제가 되어 권번(券番)에 기적을 두고 세금을 내게 하였다. 권번은 주식회사 제도로 운영되었는데, 주된 기능은 동기(童妓)에게 한국의 전통 가무를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는 한편, 기생들의 요정 출입을 지휘·감독하고 화대를 받아주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였다. 기생들이 최초로 모인 조합은 1908년 10월경 서울의 광교 조합(廣橋組合)이었다. 광교 조합은 1914년에 한성 권번(漢城券番)으로 개칭하였다.

한편, 지방에서도 권번이 설립되어 기성 권번(箕城券番)을 비롯하여 광주(光州)·남원·달성(達城)·경주·개성·함흥 등의 권번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평양에 있던 기성 권번이 널리 알려졌다. 권번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치열해질 무렵 일제의 강압 정책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복 후에 부활하였다. 그러나 1947년 10월 14일자 과도 정부 법률 제7호로 공창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권번 제도는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순창의 권번]

순창의 교방은 『연금록』에 순창 기생의 등장과 순창 기생이 선상기(選上妓)로 뽑힌 점, 『호남 읍지(湖南邑誌)』에 1895년경 교방이 설치되었다고 나와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그 존재가 확실하다. 1908년 기생 단속령이 발표되면서 기생은 경시청이 지정하는 시기에 조합을 설치하고 규약을 제정해 인가를 받도록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순창에서도 기생 조합이 등장하였는데, 순창 기생 조합은 전라북도 내에 존재하지 않고 경성 의주통(義州通)[무악재 부근] 이정목(二丁目) 201번지에 설립되었다. 순창 권번의 존재는 최동현의 『판소리 이야기』에 기술되어 있지만 그 외에는 순창에 권번이 있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황미연은 박사 학위 논문에서 순창에서는 기생 조합이 권번으로 발달하지 않았다고 서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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