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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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舟坪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주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옥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주평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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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주평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7.78㎢ |
가구수 | 46가구 |
인구[남/여] | 88명[남 44명/여 44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와룡리(臥龍里), 구은리(龜隱里), 용암리(龍岩里), 심적리(深寂里), 율평리를 통합하여 주평리라고 하였다. 주평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구은리(龜隱里)[송정 마을]의 후룡 형상이 배 모양이어서 옛날에는 일명 행주(行舟)라 하였기에 행주의 ‘주’ 자와 율평의 ‘평’ 자를 합하여 주평리(舟坪里)라고 하였다.
율평리(栗坪里)는 밤나무가 많으므로 ‘밤 율’ 자를 써서 율평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나 예부터 밤나무가 많았던 곳은 아니며, 마을 이름은 그 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후룡이 잠두(蚕頭) 형상으로 누에가 성숙하면 고치를 만들어 실을 뽑아 비단을 짜는 것이므로, 실을 뽑아내는 형상이라는 뜻의 견사율평(繭絲栗平)을 줄인 말로 추정되며, 그렇다면 ‘율평(栗平)’으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이는 이 마을 노인들의 말대로 마을 뒷산을 일자문사(一字紋糸)라고 하는 것이나 마을 앞 들판에 있었던 샘을 십상수, 즉 실 가락수가 열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쨌든 마을 이름도 율평이고, 마을 뒷산맥도 일직선이고 마을 앞 도로도 실처럼 일직선을 하고 있어 모든 면에서 순탄한 마을 형상 때문이었는지 6·25 전쟁을 전후해서 희생자가 없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와룡리, 구은리, 용암리, 심적리, 율평리를 통합하여 주평리가 만들어졌다. 6·25 전쟁 후 산골짜기에 있는 와룡 마을, 용암 마을, 심적 마을 등은 주민이 떠나고 그 터만 남아 옛 흔적만 전한다. 1971년 행정리 개편으로 다시 율평 마을과 송정 마을로 분리되었다. 송정 마을은 이웃 마을 광산 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고 정착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자연 환경]
주평리는 복흥면 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은 복흥면 정산리, 남쪽은 대방리, 북쪽은 산정리·상송리, 동쪽은 답동리·추령천과 맞닿아 있다. 심적산(深寂山)[457m]에서 산맥이 북쪽으로 뻗어와 동서(東捿) 마을을 형성하고 동쪽으로 일자봉을 이룬 것이 잠두봉(蚕頭峰)이다. 이 산맥 중간 지점에서 북쪽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이 율평 마을이다.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남의 명산 추월산의 동북단[710.4m]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산맥이 다시 봉우리를 이루니 매봉이다. 이 봉우리에서 동북 방향으로 내려간 산맥은 추령천에 막혀서 머물고 산맥의 끝자락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송정 마을이다. 마을 앞에 추월산에서 발원하여 복흥천을 향해 북쪽으로 시내가 흘러간다.
송정 마을 앞 시냇가에는 수해를 막기 위한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이는 마을 이름을 송정(松亭)이라 고쳐 부른 연유가 되었다. 송정 마을 남쪽으로 가는 골짜기에 장군 바위와 새양골 산이 있으며, 더 올라가면 절터가 있고, 더 올라가면 처사골이 있으며, 그 위로 보대암 골짜기에 보암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송정 마을에서 개울을 따라 추월산 쪽으로 1.5㎞를 올라가면 두 골짜기의 물이 합쳐지는 지점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서쪽 갈원 마을로 넘어가는 길을 30m쯤 가면 논과 산이 마주치는 지점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이 쌍계사 터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주평리의 면적은 7.78㎢이며, 인구는 46가구, 88명으로 남자가 44명, 여자가 44명이다. 2개 행정리와 3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앞으로 순창과 정읍 간 도로가 일자로 횡단하며, 복흥천 건너편으로 밭외양실이 마주 보인다. 지방도 792호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