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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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淳昌-名酒-三亥百日酒 |
이칭/별칭 | 삼해주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가잠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시명 |
관련 행사 개최 장소 | 삼해 백일주 제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가잠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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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술 |
[고려 시대부터 존재한 삼해주]
삼해주(三亥酒)는 내력이 깊은 술로 옛 문헌에 자주 나온다. 우선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가 1168년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등장한다. 또 조선 시대 문헌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산림경제(山林經濟)』,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도 등장한다. 20세기 초까지 술도가가 밀집해 있던 한강가 마포 나루 부근의 공덕동과 아현동에서 많이 빚어지던 술이 삼해주이기도 하였다.
삼해주는 십이간지의 마지막인 해일(亥日)[돼지날]에 빚는데, 세 번의 해일에 나눠 담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해주 약주는 음력 정월 첫 해일에 담기 시작하여, 음력 2월 첫 해일에 재밑술을 하고, 음력 3월 첫 해일에 덧술을 한다. 술은 다시 한 달쯤 지나야 익으니 음력 4월이 되어야 술을 거르게 된다. 양력으로 5월이 되어야 삼해주 약주의 제 맛을 즐길 수가 있다. 술이 완성되기까지 근 100일이 걸리기 때문에 백일주라는 이름을 얻었다.
삼해주는 서울을 대표하는 술로, 서울특별시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해 약주는 권희자가, 삼해 소주는 이동복이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보고된 바에 따르면, 삼해주가 전승되는 곳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영동리 영촌 마을이 있다. 남원과 순창은 이웃한 마을이고,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가잠 마을로 시집온 창평 고씨(昌平高氏)가 삼해 백일주를 잘 빚었다는 것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순창군,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에서도 삼해주가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찹쌀 죽을 쑤어 빚는 삼해 백일주]
삼해 백일주를 빚고 있는, 순창읍장을 지냈던 권문길[81세]의 집을 찾아갔다. 마침 1월 초순 삼해 백일주를 빚는 날이었다. 바깥 날씨가 차가워, 방안에서 술을 빚고 있었다. 거실에 가득 고두밥을 펼쳐 두고 식히고 있었고, 작은 방에 술 단지를 놓아두고 고두밥이 식는 대로 술밥을 섞고 있었다. 고두밥은 양이 많아 뒤꼍으로 돌아가는 통로에서 쪘고, 누룩은 창고에 저장된 것을 사용하였다. 술은 권문길의 아내인 안인영이 고두밥 80㎏ 한 가마니 분량을 혼자서 빚고 있었다. 순창 고추장 단지에 입주해 있는 아들 내외가 있지만 술 빚는 일이 힘들어서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다만 남편인 권문길이 무거운 술밥을 나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술 빚는 모습을 보니, 밑술과 덧술을 구분하여 빚고 있었다. 1주일 전에 두 솥단지 가득 찹쌀 죽을 끓여 밑술을 빚어 둔 상태였다. 찹쌀 죽은 찹쌀을 24시간 정도 물에 불려 두었다가 건져 낸 후에, 팔팔 끓는 물에 부어 한소끔 끓어 올라 퍼지면 불을 낮추어 눋지 않도록 잘 저어 주면서 쑨다. 찹쌀 죽이 잘 식으면 누룩을 섞고, 항아리를 따뜻하게 이불로 감싸 주면 일주일 뒤에 밑술이 완성된다. 덧술은 밑술에 술밥을 추가하는 것인데, 삼해 백일주는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만든다.
덧술은 밑술과 고두밥을 반죽하기 좋을 정도로 적당량 섞어서 열심히 치댄 뒤에 술독에 담는다. 밑술에다가 물 없이 고두밥만 넣기 때문에, 열심히 치대 주지 않으면, 고두밥이 따로 논다. 두 팔로 힘주어 치대야 하니, 술 빚기는 힘든 노동이다. 안인영은 이제 나이 들어 술 빚기가 힘들다고 하였고, 이제 그만 빚어야겠다는 넋두리를 하였다.
안인영은 시집온 뒤로부터 줄곧 술을 빚었다. 안인영이 사는 가잠 마을은 안동 권씨(安東權氏) 동족촌이다. 9대조 때부터 가잠 마을에서 살았는데, 삼해 백일주를 잘 담았던 사람은 시할머니인 창평 고씨라고 한다. 안인영이 시집왔을 때 창평 고씨는 사망해서, 실제 술 빚기는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다.
그런데 안인영이 현재 빚고 있는 술은 삼해 백일주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빚는 방식은 세 번 나눠 담는 삼양주가 아니라, 밑술과 덧술로 두 번 나눠 담는 이양주로 간편해져 있다. 예전은 해일에 술을 빚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날짜를 맞춰 빚지는 않는다. 삼해 백일주라는 자부심 넘치는 술이 집안과 마을에 존재하였지만, 밀주 단속의 엄혹(嚴酷)한 시절을 거치면서 간편한 방식으로 물러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안인영은 방앗간에서 통밀을 빻아와 누룩을 직접 디뎌 술을 빚는다. 누룩은 술을 빚는데 꼭 필요한 발효제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삼복더위 때에 누룩을 빚는데, 안인영은 조금 늦게 입추가 지나고 8월 하순인 처서 때에 누룩을 디딘다. 예전에는 놋대접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빻은 통밀을 물에 개서 형태를 잡아 만들었는데, 이제는 큰 포대 자루에 통밀을 10㎏, 20㎏ 넣고 디뎌서 만들어 쓴다. 누룩이 떨어지면 술을 안 빚으려고 하는데, 시장에서 파는 누룩은 사다 쓰면 술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인영이 빚은 삼해 백일주는 누룩향이 강한 편이다. 술을 한 잔 맛보면 누룩 향에 몸이 실리는데, 맥주의 진한 홉 향을 연상시킨다. 술맛은 진한데 부드럽고 단맛이 돈다.
2014년 초 현재 가잠 마을에는 53가구가 살고 있고, 그중 안동 권씨가 40가구 정도 된다. 마을 안 경로당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아들딸 시집보내고 장가보낼 때에 직접 술을 빚기는 하였지만, 그 술이 삼해 백일주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걸로 보아 삼해 백일주를 가잠 마을에서 두루 빚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인영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집과 형님 집만 삼해 백일주를 빚는다고 하니, 창평 고씨가 시집오고 난 뒤부터 집안의 술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효 마을 순창의 발효주]
가잠 마을에 사는 아흔 살이 넘은 이기남은 삼해 백일주를 알고 있긴 하였지만, 지금은 힘들어 빚지 않는다. 이기남의 딸들이 빚는 술은 삼해 백일주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안인영의 술 빚는 방법과 흡사하였다. 이기남의 딸들도 찹쌀로 술을 빚고, 밑술도 죽을 끓여 빚는다. 찹쌀 분량이 120㎏이면, 밑술 죽을 쑤는 분량은 18ℓ, 누룩은 72ℓ 분량으로 넣고, 덧술은 고두밥을 해서 넣는다. 누룩의 양이 많은 편이라, 술에서는 누룩향이 짙고 단맛이 강하게 돌았다.
안인영은 삼해 백일주는 집안 어른들이 반주로 마시는 술이었기에, 사철 끊이지 않고 빚었다고 말한다. 술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늘어나 전라북도청에 들어가기도 하였고, 전북 출신 국무총리가 찾아 서울로 올라가기도 하였다. 손님이 와서 술상을 차려 낼 때면, 안주가 푸짐한데 유과, 동아정과, 감단자, 송화다식, 육포, 깨강정 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안인영이 양조를 하겠다거나 문화재 지정을 받으려 하지 않은 것은, 양반집에서 술을 빚는다는 말을 듣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순창 지역의 술 마시는 흥미로운 풍습 중의 하나는 밥뚜껑을 활용하는 것이다. 안인영은 집안 어른들이 반주로 삼해 백일주를 마실 때는 밥뚜껑인 복지개에 술을 따랐다. 또 음식점에서 반주를 마실 때에도, 복지개 위에 술잔을 올려놓고, 술을 마시고 나서 복지개를 열어 식사를 하였다. 어른들에게 반주로 술 한 잔 대접하였던 풍습인데 이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삼해주는 한양을 중심으로 20세기 초반까지 널리 빚어졌던 술인데, 그 자취를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 삼해주가 순창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다. 순창에 이웃한 담양에서 시집온 창평 고씨가 친정에서 가져온 술이라는 증언이 있지만, 한양에서 벼슬을 하였거나 한양 나들이 하였던 집안 어른이 전해 준 것일 수도 있다. 순창 가잠 마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삼해 백일주는 순창의 특산품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가지고 있다. 밑술을 빨리 수월하게 완성시키기 위해서 죽을 쑤는 점과 단맛이 도는 고급술을 얻기 위해서 찹쌀을 사용하였던 점도 가잠 마을 삼해 백일주의 특징이다. 삼해 백일주는 순창의 술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문화 콘텐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