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56
한자 水利組合
영어공식명칭 Irrigation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소래수리조합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 칠리제공려수리조합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 매화공려수리조합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흥부수리조합 설립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수리조합.

[개설]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産米增殖計畵)에 따라 경기도 시흥 지역에도 네 개의 수리 조합이 설립되었다. 1929년 소래수리조합이 만들어졌고, 1939년 칠리제공려수리조합과 매화공려수리조합이 만들어졌다. 1942년에는 흥부수리조합이 세워졌다. 네 개의 수리조합은 시흥의 논을 수리 안전답(水利安全畓)으로 바꾸어 농업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쌀 수확량 증가가 소작농이 많은 시흥 지역 농가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설립 목적]

소래수리조합은 계수저수지를 수원지로 하여 당시의 부천군 소래면 미산리, 안현리, 은행리, 계수리의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칠리제공려수리조합은 칠리제저수지를 수원지로, 소래면 무지리 일대의 논에 관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매화공려수리조합은 도창저수지를 수원지로, 소래면 매화리·도창리와 시흥군 수암면 하중리의 논에 관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흥부수리조합은 조합 설립 이후 1944년 준공된 물왕저수지를 수원지로, 소래면 매화리·도창리·금이리와 수암면 광석리·물왕리·하상리·하중리의 논에 관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소래수리조합의 몽리 구역(蒙利區域) 면적은 186정보[184만 1400㎡]이다. 몽리 구역은 수리 시설에 의해 농사에 혜택을 입는 구역을 말한다. 칠리제공려수리조합의 몽리 구역 면적은 35정보[10만 5000㎡]이고, 매화공려수리조합의 몽리 구역 면적은 150정보[45만㎡]이다. 공려수리조합은 몽리 구역 면적이 소규모인 조합으로 국고(國庫) 보조 없이 도비(道費) 보조만 이루어졌고, 전국적으로 58곳이 설립되었다.

흥부수리조합의 몽리 구역 면적은 277정보[83만 1000㎡]로 시흥 지역 수리조합 가운데는 가장 컸다. 흥부수리조합의 수원지인 물왕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말에 완성되어 수리 혜택과 효과는 광복 후에 본격화되었다. 4개의 수리조합이 설립됨으로써 시흥의 주요 경작 지대가 수리안전답이 되었다. 따라서 천수답(天水畓)이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생산성이 높아졌다.

수리조합은 혜택을 보는 농민 조합원들로부터 조합비를 거두었다. 수리조합비는 생산량의 20% 정도였으며, 소작인의 수리조합비는 지주와 반반씩 부담했다. 당시 시흥 지역의 소작인들은 수확량의 절반 정도를 지주에게 소작료로 물었다. 수리조합비까지 하면 소작인의 부담은 수확량의 60%가 된다. 시흥의 수리조합은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시흥에서 가장 먼저 생긴 소래수리조합의 경우 당시 경기도 내 수리조합 13곳 가운데 3번째로 작은 조합이었다. 시흥 지역은 경지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고, 부재지주(不在地主)가 많았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 지역에 만들어졌던 4개의 수리조합은 90%가 천수답이었던 논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리조합은 수리조합비를 상회하는 수확량 증가로 쌀 생산량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당시 시흥 농민의 60%에 이르는 소작농의 생활을 향상시킬 만큼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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