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0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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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戶口總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 지역의 호구 수와 인구수 등을 기록한 통계 기록.
[개설]
『호구 총수(戶口總數)』는 18세기 후반 전국의 호구(戶口) 현황을 기록한 통계 기록이다. 조선 전기 3개 식년(式年)과 1639년(인조 17) 이후의 호구 총수를 모아 두었고 마지막 식년은 1789년(정조 13)이다. 모두 9책으로 구성되며 제2책 이하에서는 도별 호구 기록을 기재하고 있다.
조선 후기라는 특정 시기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전국의 모든 방면별 호구 수를 원호(元戶)와 남녀별로 세분하여 조사한 자료로 조선시대의 호구 변화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기록되어 있는 방리(坊里)의 명칭과 수는 지명 및 지방 행정 조직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이 자료를 인구사 연구 등에 그대로 이용하기는 어렵지만 백성에게 부과되는 노동력 징발의 기초 자료로 이용된 성격 등을 고려한다면 조선 후기 재정 관련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저자]
조선 후기에는 한성부(漢城府)가 전국의 호구 기록을 관장하였다. 『호구 총수』도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한성부가 보관하고 있던 전국 자료를 이용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저자나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이전 시기의 호구 자료가 모두 소실되었고 1606년(선조 39)부터 1636년(인조 14)까지의 호구 자료도 온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실록에 기재된 호구 총수 일부를 그대로 기록하고 1639년 이후의 호구 자료를 이용하였는데 좀 더 효율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징발하기 위해서는 호구를 새롭게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호구 총수』는 이러한 호적의 통계 부분만을 종합한 것으로 국가 재정 운영에 자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총 9책의 필사본으로 규격은 가로 21.7㎝, 세로 32.9㎝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호구 총수』는 모두 9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책은 1395년(태조 4), 1397년(태조 6), 1428년(세종 10)의 자료와 1639년 이후 식년별 총계 자료, 그리고 한성부의 기유(己酉) 식년 자료를 포함한다. 제2권부터 제9권까지는 도별 호구 총수를 기록하고 있다. 제2책 경기도, 제3책 원춘도(原春道)[지금의 강원도], 제4책 충청도, 제5책 황해도, 제6책 전라도, 제7책 평안도, 제8책 경상도, 제9책 함경도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도별 자료의 도입부에는 원호와 구수(口數)를 기록하고, 관할하는 각 군현의 행정구역을 면(面)까지 구분하여 면별 원호와 구수를 기록해 놓았다. 특히 인구수는 총인구와 함께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여 기록해 놓았다.
지금의 시흥시는 제2책 경기도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안산군의 마유면·대월면·초산면·잉화면, 인천도호부의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 등이 지금의 시흥시를 구성하는 지역들이다. 『호구 총수』에 따르면, 당시 시흥 지방의 인구는 총 3,672가구에 인구수는 1만 5044명이 거주하였으며, 경기도 전체 인구의 2.3%에 해당하였다. 남자가 7,977명이었고 여자가 7,067명으로 남자의 비율이 높은 남초(男超) 지역의 성격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