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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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 |
집필자 | 박종익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12월 21일 - 서산읍 덕지천리에서 김정헌[남, 80]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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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서산민속지』하 수록 |
관련 지명 | 서산읍 수석리 - 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 |
채록지 | 서산읍 덕지천리 -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 |
성격 | 전설|풍수담|지명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씨|지관|용 |
모티프 유형 | 명당 파손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서 연못배미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소탄산 밑의 연못배미」는 좋은 묫자리를 찾아 주었으나 사례비를 받지 못한 지관이 계교로 명당을 파손하여 산소 주인인 이씨가 절손되었다는 풍수담이자 연못배미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41~142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1일 충청남도 서산읍 덕지천리[현 서산시 덕지천동]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정헌[남, 80]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서산읍 수석리[현 서산시 수석동]에 소탄산이 위치한다. 그리고 이 소탄산의 아래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을 메워 만든 논이 연못배미이다.
옛날 이곳에 살던 이씨가 지관과 함께 조상의 묫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는 가운데 소탄산 밑의 꼭두쟁이네 집 뒷머리가 좋다고 생각되어 그곳에 묘를 썼다. 묘를 쓰고 나서 지관이 약속한 사례비를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씨는 ‘설마 지관이 묘를 파가랴?’ 싶어 차일피일 미루고 사례비를 주지 않았다. 이씨가 요리조리 말을 돌리며 사례비를 주지 않자 지관은, ‘야! 요놈을 봐라. 내가 좀 망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씨에게 앙심을 품었다.
하루는 지관이 이씨를 찾아와,
“느이 집이 대번 불 같이 일어나게 헐 재료가 있다. 너, 그때도 사례비 안주면 안 된다.”
“아, 드리고 말구유.”
“방죽을 메워라. 방죽에 사기를 잔뜩 깨트려서 넣고 소금 몇 백 가마를 퍼다 넣고 메워라.”
라고 하였다. 이씨는 지관의 말에 따라 방죽에 많은 사기 조각을 넣고 소금 가마니를 쏟아 부었다. 그러자 민물에 살던 방죽의 용이 소금으로 인해 몸을 비틀고 괴로워했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사기 조각에 긁혀 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는 방죽 밖으로 나와 절명하였다. 이렇게 연못의 용을 죽인 이씨는 그 뒤로 손이 단절되어 가문이 문을 닫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소탄산 밑의 연못배미」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파손이다. 전설상에는 이씨의 산소가 어떤 형국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산소와 신성한 용이 살고 있는 방죽이 상호 호응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씨가 사례비를 주지 않자 지관이 호응 관계를 이루는 연못의 용을 훼손시킴으로 해서 산소의 지기를 누른 것이다. 이외에도 서산시에는 다수의 풍수 전설이 전승되고 있는데 「팔봉산의 명당자리」, 「무학대사가 잡아 준 묫자리」 등이 같은 계열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