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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04
한자 樓亭
이칭/별칭 정자,누각,대각,누대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이춘진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개설]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곳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정자는 누각보다는 작은 건물로,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주로 입지하였으며,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정자가 개인적 공간이라면, 누각은 공동의 공간으로 활용 된 차이가 있다. 또한 이 두 건물은 정신 수양과 학문을 연마하면서도 동시에 풍류를 즐기는 높은 수준의 문화 향유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산의 누정에 관한 기록으로는 1530년(중종 25)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에 청심당(淸心堂)과 안흥정이, 18세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청심당·어풍루(御風樓)·애련당(愛蓮堂)·청허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누정으로는 해미읍성 청허정(海美邑城淸虛亭), 부성산 오현정(五賢亭), 해미 안흥정(海美安興亭), 양유정(楊柳亭)이 있다.

[해미읍성 청허정]

해미읍성 청허정해미읍성의 북동부 구릉 정상에 위치하며, 둥근 기둥 8개 위에 우진각 지붕을 올린 전형적인 형태이다. 청허정의 최초 건립 시기는 부정확하나 『여지도서』에 ‘청허정재성내주산(淸虛亭在城內主山)’이라 하여 18세기까지 건물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72년(고종 9)에 발간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금위정훼지존(今爲亭毁址存)’이라 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해미현 지방지도」에도 ‘청허정고지(淸虛亭古址)’라 하여 그 터만 표시된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 정자는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는 해미읍성 청허정 자리에 신사(神社)가 건립되었으며, 당시 신사 진입을 위해 만든 계단이 남아 있다. 광복 후 신사는 철거되었다.

[부성산 오현정]

부성산 오현정부성산에 있는데, 지금의 건물은 1993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원래 오현정은 사각형의 건물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팔각정이다. 1600년(선조 33) 김대덕(金大德)이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서산오현인 최치원(崔致遠), 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숙(柳淑), 고경명(高敬命)을 기리는 영시(詠詩)를 지어 관아 정문 누각에 걸어 두었다. 시간이 흘러 현판이 낡아 없어지자 1887년(고종 24)에 최학순(崔鶴淳) 등이 건의하여 다시 영시판(詠詩板)을 제작하였고, 1913년 서산군수 권익채(權益采)가 부성산성 내에 오현각을 건립하고 옮겨 걸었다.

[해미 안흥정]

서산은 서해에 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중국과의 교역창으로서 주목되었는데, 안흥정은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휴식을 취하던 객관의 기능을 하였다. 이는 『고려사(高麗史)』「세가」1077년(문종 31) 7, 8월조에 “보령 고만도(高蠻島)에 있는 정자가 사신을 맞는 데 어려움이 있어, 안흥정을 설치하였다”라고 한 것이나, 12세기에 간행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1123년(인종 1) 해로(海路)를 통해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에 왔을 때 안흥정이라는 객관에 머물렀다”는 기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안흥정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에 관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양유정]

양유정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었는데 건물이 낡아 1958년에 철거하고, 2009년에 새로 지었다. 정자가 있던 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나 양유정의 유래가 된 버드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읍내동 느티나무의 수령은 약 300~400년가량으로 추정되며, 1982년 서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한편 『서산군지』에 따르면 양유정은 유정쇄연(柳亭鎖煙)[양유정에 자욱한 물안개]이라 하여 그 풍경이 서산 팔경 중 하나로 유명하였는데, 1990년대 명림천의 복개 공사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아 이 정취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황]

해미읍성 청허정해미읍성의 보수 공사가 진행되면서 1976년에 현재의 위치에 23㎡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되었다. 부성산 오현정 역시 건물이 오래되어 허물어지자 1993년에 새롭게 건립되었다. 기존의 현판은 보수 도중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제작하였다. 안흥정 터는 경작지로 활용되어 훼손이 심하다. 그나마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일부가 확인되는 정도이며, 초석의 위치가 원위치에서 상당히 벗어나 구체적인 규모 확인이 어렵다. 양유정은 철거된 자리에 새로 건립되어 원형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 놀이터와 마을 숲 등이 조성되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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