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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서산교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299
한자 天道敎瑞山敎區
영어음역 Cheondogyo Seosangyogu
영어의미역 Seosan Diocese of Cheondo-gyo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명륜2길 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은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7년 5월 19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서산에 천도교 교구 성치
이전 시기/일시 1921년 8월연표보기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360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3월연표보기 - 방화로 교당 전소
현 소재지 천도교 서산교구 - 충청남도 서산시 명륜2길 21[읍내동 360]지도보기
성격 종교 단체
설립자 장세화(張世華)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천도교 소속 교구.

[설립 목적]

‘한울림’의 덕과 진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포덕천하(布德天下)’, 널리 창생을 구제하는 ‘광제창생(廣濟蒼生)’, 국가를 보위 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하는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을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서산 지역의 천도교 전래는 지곡면 장현2리 경주 최씨 최형순(崔亨淳)이 종사(宗事)로 경주를 왕래하던 중 동학(東學)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교화를 받고 고향에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최형순은 1892년(고종 29)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영향이 당진, 태안, 홍성 지역까지 이르렀다. 이후 교세는 더욱 확장되어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 지역에서만 그 신도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1907년 5월 19일에는 서산에 천도교 교구가 성치되고 초대 교구장에 장세화(張世華)가 취임하였다. 1921년 8월에는 제8대 교구장인 이종만(李鍾萬)이 교인들의 성금을 모아 서산시 읍내동 360번지에 122.314㎡의 초가 건물을 지어 교당을 마련하고 포덕에 힘썼다. 1990년대에는 50여 세대, 150여 명의 신도가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신간회(新幹會) 행사는 물론이고 민족적 애국 행사가 천도교 서산교구 교당에서 개최되었다. 현재 대종교의 교의인 ‘홍익인간’을 널리 알리는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황]

천도교 서산교구는 16대 교구장 1명과 총무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주요 행사인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의 시일(侍日) 행사에도 모이는 교인이 4~5명에 불과할 정도로 교세가 약화되었다. 전체 교인 세대는 30가구 정도이다. 더구나 2010년 3월 방화로 교당이 전소되어 보수가 필요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민족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천도교천도교 교당의 사례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서산시지』(서산시지편찬위원회, 1998)
  • 인터뷰(천도교 서산교구 제16대 교구장 박종혁, 201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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