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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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名生埋葬殉敎者墓 |
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성태 |
조성 시기/일시 | 1995년 9월 20일 -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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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866년 - 병인박해기 생매장 순교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872년 - 병인박해기 생매장 순교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5년 4월 1일 - 서산성당 범바로 신부 주관으로 유해 발굴 |
이장 시기/일시 | 1935년 4월 2일 -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로 이장 |
이장 시기/일시 | 1995년 9월 20일 - 본래 위치로 재이장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5년 - 백낙관과 재서독(在西獨) 광부 및 간호사들의 후원으로 상홍리 순교자 묘역 정비 |
현 소재지 | 서산 해미성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원소재지 | 여숫골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전천리 361-10 |
출토 유물 소장처 | 해미순교성지기념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성격 | 무덤 |
관련 인물 | 병인박해기 천주교 무명 순교자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약 4m[봉분 지름]|약 100㎡[묘역 면적] |
소유자 | 천주교 대전교구 |
관리자 | 천주교 해미성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
[개설]
해미천이 지나는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일부와 조산리 일대는 천주교 박해기 천주교도들의 생매장 처형지로 알려져 왔다. 1935년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진 발굴 작업에서는 상당수의 유골이 발견되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순교하여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순교자들의 유해는 천주교 당국에 의해 수습·보존되다가, 자신들이 목숨을 바친 순교의 현장에 다시 안장되어 있다.
[위치]
여숫골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는 서산시 해미면의 해미성지 내에 있다. 성지 입구에 있는 원형 성당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연결된 구내의 보행로를 따라 들어가면 잔디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 해미 순교탑과 함께 둥근 모양으로 조성된 봉분이 바로 여숫골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이다.
[변천]
일명 여숫골로 알려진 조산리 생매장 터는 1935년 범바로 신부가 주도한 유해 발굴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된 유해는 그해 4월 2일에 현 서산성당의 전신인 상홍리성당 뒤편의 백씨·임씨 선산 최상단에 안장되었다. 1955년 서산성당 신균식 신부와 백낙근 상홍리 공소 회장은 순교자 묘 주변에 십자가 순교탑과 ‘병인년해미순교자묘’ 비를 건립하였다. 1965년에는 백낙근과 재서독(在西獨) 광부 및 간호사들의 후원으로 상홍리 순교자 묘역을 정비하였다. 이후 해미성지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천주교 대전교구장 경갑룡 주교 주관으로 1995년 9월 20일에 순교 터이자 유해 발굴 장소인 여숫골에 묘지를 조성하고 이장하였다.
[형태]
여숫골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는 1975년에 건립된 해미순교탑 전면에 있다. 둥근 모양의 분묘는 아랫부분에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렀고, 주변 바닥은 화강석을 깔아 놓았다. 일반적으로 분묘 앞에 상석(床石)이 있지만, 이 묘에는 상석이 없고 대신에 미사를 드리는 제단이 분묘 뒤쪽에 마련되어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있고, 앞쪽의 양옆으로 한 쌍의 문관석이 설치되어 있다.
[금석문]
묘비에는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1935년 4월 20일, 해미에서 발굴하여 서산 상홍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이제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이곳 현 위치에 옮겨 모시다. 1995년 9월 20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경갑룡[요셉]’ 비문 중 1935년 4월 20일은 4월 2일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현황]
천주교 당국은 여숫골 생매장 터에서 발굴하여 상홍리에 안장했던 유해를 1995년 다시 여숫골로 이장하기 위하여 파묘하였다. 이때 수습한 유해는 현재 세 곳으로 나누어 보존되고 있다. 형태가 분명한 50여 편의 유골과 200여 개의 치아 등은 보존 처리를 하여 여숫골 해미성지 내 순교기념전시관 유해 참배실에 안치되어 있다. 다음으로 유해가 부식되어 섞인 진토는 십자가 등의 부장품과 함께 다시 상홍리 묘지에 안장하였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유골들은 무명 순교자 묘 속에 안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해미성지는 이름을 알 수 있는 순교자보다 무명 순교자가 더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집단적으로 생매장된 순교자 유해가 확인된 유일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와 그들이 안장된 무덤은 병인박해기 가장 처참했던 내포 및 해미 지역의 순교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