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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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可近 |
영어음역 | Gim Gageu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영하 |
출생 시기/일시 | 1658년 - 김가근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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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40년 - 김가근 졸 |
추모 시기/일시 | 1774년 - 명정받음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정려 중수 |
출생지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
거주|이주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
사당|배향지 | 정려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후기 서산에서 활동한 효자.
[가계]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5대손으로 인조 때 문장가였던 안풍군(安豊君) 김득신(金得臣)이다. 부인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의 전주 이씨로 이동백(李東白)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가근(金可近)[1658~1740]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김가근이 어려서부터 얼굴이 수려하고 총명하므로 장차 가문을 빛낼 것이라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병석에 있을 때 화적이 들이닥쳐 해치려 들자 온몸으로 막아 할아버지를 구하고 칼에 찔렸다. 이에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였다. 시문을 좋아했으나 과거를 치르지 않고 후에 처가가 있는 운산으로 이주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다. 묘소에는 1883년에 세운 구묘비와 최근 건립한 신묘비가 1기씩 있다. 효자 김가근 정려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상훈과 추모]
해미 사람들의 천거로 1774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고 명정(銘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