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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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學 |
영어음역 | Muhak |
이칭/별칭 | 자초(自超),계월헌(溪月軒),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출생 시기/일시 | 1327년 - 무학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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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344년 - 소지선사(小止禪師)에게 출가 |
활동 시기/일시 | 1353년 - 원나라 연도(燕都)에서 나옹 만남 |
활동 시기/일시 | 1371년 - 나옹에게서 의발(衣鉢)을 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384년 - 이성계 만남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왕사에 책봉됨 |
활동 시기/일시 | 1393년 -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
활동 시기/일시 | 1405년 - 금강산 금장암으로 옮김 |
몰년 시기/일시 | 1405년 - 무학 졸 |
출생지 | 쑥섬마을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쑥댕이마을 |
학교|수학지 |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
활동지 | 회암사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왕사 |
[정의]
고려말 조선초 서산 출신의 승려.
[개설]
법명은 자초(自超), 당호는 계월헌(溪月軒), 법호는 무학(無學). 속세의 성은 박씨(朴氏)로, 아버지는 숭정대부문하시랑(崇政大夫門下侍郞)에 증직된 박인일(朴仁一)이고, 어머니는 고성 채씨(固城蔡氏)이다.
[활동 사항]
기록에 의하면 무학[1327~1405]의 고향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기면으로 이곳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문집류나 여러 가지 관련 설화에는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쑥댕이마을[또는 인지면 모월리] 출신으로 되어 있다. 출생과 관련된 내용을 종합하면 무학의 부모는 합천 지역에 살다가 어떤 사정으로 서산으로 옮겨 무학을 낳은 뒤 합천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는 출생지와 관련된 설화뿐만 아니라 무학이 창건하였고,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이름을 지었다는 간월암이 있다.
무학은 18세인 1344년(충혜왕 5) 송광사(松廣寺)의 소지선사에게 출가하였다. 소지선사의 소개로 용문산 혜명국사와 법장국사를 찾아가 부도암(浮屠庵)에 머무르며 불법을 배웠고, 이후 진주 길상사(吉祥寺), 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행하였다.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연도(燕都)에서 유학하던 중 인도 승려 지공(志空)을 만나 도를 인정받았고, 법천사(法泉寺)에서 나옹(懶翁)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귀국한 뒤 성천산 원효암(元曉庵)에 머물던 나옹을 찾아가 법을 전하는 표시인 불자(拂子)를 받았으며, 나옹이 신광사(神光寺)로 옮기자 그곳으로 찾아가 만나기도 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왕사가 되어 송광사에 머물던 나옹으로부터 선종에서 법을 전하는 표징인 의발(衣鉢)을 받아 사제 관계를 굳건히 하였다. 1376년(우왕 2)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있던 나옹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해 나옹이 입적하자 명산을 돌아다니며 은둔하던 중 공양왕이 왕사로 삼고자 무학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1384년(우왕 10) 석왕사(釋王寺) 인근 토굴에 머물 때 이성계(李成桂)를 만났다. 이성계가 꿈 이야기를 하며 풀이를 부탁하니 무학은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392년(태조 1) 무학은 왕사로 책봉되고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 변지무애 부종수교 홍리보제 도대선사 묘엄존자(大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傳佛心印 辯智無碍 扶宗樹敎 弘利普濟 都大禪師 妙嚴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정도전(鄭道傳) 등의 유학자 출신 관료들이 불교를 탄압하려고 하자 유불일치설(儒佛一致說)을 주장하는 등 불교 살리기에 힘썼다. 이후에도 태조의 곁에 머물면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많은 조언을 하였다.
1393년(태조 2) 태조가 왕도(王都)를 옮기려 하자 계룡산, 한양 등 후보지를 돌아다니며 지세를 살핀 후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하였다. 회암사에 지공과 나옹의 사리탑을 세우는 등 불사(佛事)를 베풀고 1405년(태종 5) 금강산 금장암(金藏庵)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저서로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와 필사본인 『무학비결(無學祕訣)』이 전하지만 『무학비결』은 위서라는 주장이 있다. 『인공음(印空吟)』과 『무학대사어록(無學大師語錄)』도 있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