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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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弘宇旌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895년 - 채홍우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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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90년대 - 화재로 정려각과 현판 소실 |
현 소재지 | 채홍우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 |
성격 | 정려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있던 개항기 효자 채홍우(蔡弘宇)의 정려.
[개설]
채홍우[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성년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공양하고 효행이 각별하여 내외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을 얻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하였으며, 매일 아버지의 인분을 맛보아 증상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구하기 어려운 버섯과 잉어를 구하여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각각 3년씩 시묘(侍墓)하였는데, 그 정성에 감읍한 호랑이가 호위해 주고 새가 그 근처를 날지 않았다고도 전한다.
[위치]
채홍우 정려(蔡弘宇旌閭)가 있던 곳은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 입구이다.
[변천]
채홍우의 효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근 유림에서 채홍우의 효행을 추천하였고, 1895년(고종 32) 명정을 받아 건립하였다. 100여 년 전 화재로 인해 정려각과 현판이 소실된 후 다시 지어지지 못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채홍우 정려 관련 자료는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사는 후손 채병일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은 평강 채씨(平康蔡氏) 채근후(蔡謹後)가 1670년(현종 11)경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부터 약 3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다. 채홍우 정려의 명정 과정을 통해 19세기 중반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일대에 살았던 평강 채씨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