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643 |
---|---|
한자 | 望雲臺碑石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939년 - 건립 |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64년 - 축대 중수 |
현 소재지 | 망운대 비석 -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정신보|정인경 |
크기(높이,너비,두께) | 145㎝[높이]|41㎝[너비]|18㎝[두께]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망운대(望雲臺) 정상에 세운 일제 강점기 때 비석.
[개설]
정신보(鄭臣保)[?~1261]는 송나라 절강 사람으로 형부원외랑을 역임하였으며, 몽고를 피해 서해를 건너 간월도에 상륙하였다. 정신보는 이후 고창현[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람 오영로의 딸과 혼인하여 정인경(鄭仁卿)[1241~1305]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서산 정씨의 시조이다. 결국 송나라가 멸망하자 정신보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대사동[현 서산시 석림동]에 축대를 쌓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그 축대의 이름을 망운대(望雲臺)라 하였다.
[건립 경위]
망운대 비석은 1939년에 건립되었고, 1964년에 축대가 중수되었다.
[위치]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석림초등학교에서 남동쪽으로 700m 정도 거리에 망운대가 있으며 그 정상에 망운대 비석이 있다. 10여 그루의 소나무가 망운대 비석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바로 동쪽에 간이 헬기장이 있다.
[형태]
망운대 비석은 높이 145㎝, 너비 41㎝, 두께 18㎝이다. 정면에는 ‘정선생원외랑망운대(鄭先生員外郞望雲臺)’라고 쓰여 있다. 비문의 내용은 정신보와 그의 아들 정인경의 사적에 관한 것이다.
[현황]
현재 망운대 전방은 간척지로 넓은 들이 조성되어 있으나,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던 지역이었다. 당시 쌓았다고 전하는 축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 정신보의 사적을 기리는 망운대 비석은 바다를 향하여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망운대는 고려 시대 누란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오늘의 서산이라는 지명(地名)을 있게 한 서산이 낳은 충신인 정인경이 구축한 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