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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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倉村倉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제연 |
소재지 | 창촌 창터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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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창고 터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창고 터.
[변천]
창리(倉里)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지역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운을 통해 운반되는 세곡의 저장 공간이었고, 또한 배를 만드는 창고인 선박소의 기능도 하였다.
창촌 창터는 1800년대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화변면 왜현리(倭懸里)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927년 편찬된 『서산군지』에 의하면 ‘왜현리’라는 지명은 서산군수였던 박○언(朴○言)이 왜구를 격퇴시킨 자리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충청도읍지』와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화변면 왜현리에 귀선(龜船) 1척, 방선(防船) 1척, 병선(兵船) 1척, 사후(伺候船) 3척이 배치되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서산군지』에 의하면 왜현리에는 주사창(舟師倉)[배를 만드는 창고] 15칸이 있었다고 하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통하여 주사청(舟師廳)의 규모를 알 수 있는데 대청 5칸, 군기고 13칸, 집물고 5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주사창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부유한 개인 집에서 배를 직접 제작한 일은 있었다고 하며, 군기고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의 주사창이 어느 시기에 훼철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만들어진 배의 규모와 형태도 밝혀지지 않는다. 1872년(고종 9) 제작된 서산군 지방 지도에는 안면도에 접한 해안선에 선박처(船泊處) 주사창이 표기되어 있다.
[위치]
서산시 부석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10㎞ 정도 거리에 부석면의 남쪽 끝 마을에 해당하는 창리 창촌마을이 있다. 창촌 창터는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의 지방도 649호선 서측으로 슈퍼마켓과 다방이 있는 건물 자리에 해당한다.
[현황]
창촌 창터의 면적은 661.16㎡[200여 평] 이상으로 추측되는데, 현재는 도로가 개설되고 건물이 들어서 있으므로 유구나 유적의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건물을 건축하기 전에 기와편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창촌 창터로 전해지고 있는 곳은 창촌 나루터에 바로 인접하여 형성된 상가 및 민가 지역의 일부라고 전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배를 만드는 창고인 주사창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창촌 창터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