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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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磻陽里山城 |
이칭/별칭 | 성산성(城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최병화 |
현 소재지 | 반양리 산성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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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성곽 |
양식 | 석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4m[높이]|약 65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건립 경위]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확인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해미현 고적조에 “성산성(城山城)은 석축 둘레 1,403척으로 현재는 폐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현재의 반양리 산성 위치에 고성(古城)이 표시되어 있어 성산성을 반양리 산성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반양리 산성은 석성으로 축성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이미 폐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어 백제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문헌 기록을 고려할 때 고려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자료로서는 산성의 축조 배경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오랜 동안 서산 지역 주변 일대를 감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대전~당진 간 고속 국도 해미IC에서 서쪽으로 국도 29호선을 따라 약 1.5㎞ 정도 가면,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을 지나 오른쪽으로 해미중학교가 나타난다. 반양리 산성은 해미중학교 뒤쪽으로 높게 솟아 있는 야산[163m] 정상부에 위치한다.
[형태]
야산 정상부에 축성되어 있는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650m이다. 성이 축성된 산이 삼각형의 형태인데, 자연 지형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봉우리를 둘러싼 성벽의 평면 형태도 삼각형을 이룬다.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연결된 능선의 맨 끝 부분에 축성되어 뒤쪽으로는 높은 봉우리가 솟았으며, 남쪽으로는 작은 계곡을 포함한다. 따라서 성내 지형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底)를 이룬다.
[현황]
2011년 현재 반양리 산성의 성벽은 대부분이 무너졌지만 석재를 사용하여 협축으로 축성한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상태가 양호한 성벽은 높이 4m 정도이다. 급하게 경사진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성벽 아래쪽으로는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실제로 방어에 매우 유리한 편이다.
성문은 남벽과 북서벽에서 확인되며, 성벽이 끊긴 부분이 있어 문지임을 확인할 수 있으나 정확한 구조나 규모는 알 수 없다. 남문지는 약 5m 정도 성벽이 끊어져 있고, 성 안쪽과 밖의 높이 차가 거의 없는 편이다. 서북쪽에 위치한 북문지는 약 3m 정도 성벽이 끊어져 있으며, 남문지와 비슷한 양상이다.
건물 터는 성내 곳곳에 자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벽의 서쪽 부분은 절반 정도가 평탄면을 이루고 있어 대규모의 건물 터가 자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는 개배편을 비롯한 백제 토기편과 삼국 시대 기와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2011년 현재 반양리 산성에서 백제 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고, 조선 시대에는 폐해졌다는 문헌 기록을 고려할 때, 성은 백제 시대 축조되어 고려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산성의 입지와 규모, 성내 출토 유물, 폐기 시점 등으로 보아 반양리 산성은 서산 지역의 해안을 방어하면서 행정·군사적 중심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 초기 서산 해미읍성이 나타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