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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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民瞻 |
영어공식명칭 | Gang Mincheom |
이칭/별칭 | 은열공(殷烈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윤종준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묘가 있던 고려 전기 무신.
[개설]
강민첨(姜民瞻)[963~1021]은 고려 전기 여진족과 거란족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할아버지는 강극술(姜極述)이고, 아버지는 강보능(姜甫能), 어머니는 거창 신씨(居昌愼氏)이다.
[활동 사항]
강민첨은 1018년(현종 9) 거란군이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부원수로 출전하여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소손녕(蕭遜寧)의 거란군 10만 명에 대하여 20만 8300명으로 격퇴하여 병부상서에 올랐다.
[묘소]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일대는 진주 강씨의 세거지였으며 세장지지(世葬之地)가 있는데,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묘지를 둘러싼 분쟁이 있었다. 광주(廣州)의 유학 강헌규(姜獻圭)가 격쟁하기를 “저의 28대조 고려의 병부상서 강민첨은 광주 복정동(福井洞)에 입장(入葬)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정에 들어와 대제학 강천명(姜天命), 직제학 강은(姜隱), 대사성 강노(姜老), 판사 강희신(姜熙臣)이 모두 이곳에 입장되었고 지금 이미 700여 년이 넘었습니다. 양원군(楊原君) 이희(李憘)는 저의 11대조 대사성 강노의 외손서(外孫壻)이므로 우선 장지 한 곳을 빌렸습니다.” 하였다. 또 강득일(姜得一)은 “저의 29대조인 고려의 상서 강민첨부터 광주 세촌면(細村面)에 계속 매장하여 겹겹이 서로 바라 보이고 사면의 산록이 모두 강가(姜哥)의 땅입니다. 다만 산록 하나는 저의 11대조가 사위 유씨(柳氏)에게 빌려주었고, 유씨 또한 그 사위 양원군(楊原君)에게 빌려주어 유계문의 무덤 아래 3~4보 되는 곳에 매장하였는데, 20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씨와 유씨 두 집안은 모두 제 집안의 외손으로, 본디 제 집안의 국내의 땅을 빌려 매장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의 집안이 계속 매장하는 데 대해 감히 금장(禁葬)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진주 강씨는 땅 일부를 유계문에게, 유계문은 다시 성종(成宗)의 왕자인 양원군 이희(李曦)의 묘지 터로 주었던 것이다. 지금 유계문과 이희의 묘는 모두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