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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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文正理 |
이칭/별칭 | 국문졍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주영 |
저술 시기/일시 | 1897년 - 국문정리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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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24일 - 국문정리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
성격 | 국어문법서 |
저자 | 이봉운 |
권책 | 1권 |
판심제 | 국문졍리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이봉운이 집필한 국어문법서.
[개설]
『국문정리(國文正理)』는 1897년 국어학자 이봉운(李鳳雲)이 한글로 써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국어문법서이다. 갑오개혁 이후 한글 사용이 확산되면서 말과 글을 일치시키고 국어 교육에 활용해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발행된 국어 연구서이다. 이봉운 선생은 한글 사용에 따른 국문의 체계적 연구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어와 국문에 대한 학자적 견해를 『국문정리(國文正理)』에 담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이며,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저자]
이봉운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국어학자로 국문정리, 『단어연어일화조준(單語連語日話朝雋)』[1895]을 저술했다.
[편찬/간행 경위]
국문정리는 갑오개혁 이후 한글 사용이 확산되면서 우리 언어와 국문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펴낸 국어문법서이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우리 언어에 대한 사랑이 민족애의 기초이며, 국문을 연구 보급하는 것이 자주 독립과 민족 자강을 위한 일이라는 국문 운동의 흐름이 등장했다. 『국문정리(國文正理)』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라 국어와 국문 체계를 정립한 저술이다.
[형태/서지]
국문정리는 목판본으로 인쇄되었다. 1책 14장의 분량으로 표지 장정은 오침선장본으로 제작했다. 순 한글로 쓰여 있고, 본문에 띄어 읽기 표시가 되어 있다.
[구성/내용]
국문정리는 「자모 규식」, 「장음 반절 규식」, 「단음 반절 규식」, 「외이 받침 규식」, 「언어 장단 규식」, 「문법론」, 「문법 말 규식」, 「탁음 규식」, 「어토 규식」, 「새 언문 규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의 말미에 발행일과 저자명이 쓰여 있고, 학부대신 민종목, 협판 민영찬 등 6인의 이름과 ‘경성 묘동 국문국’이라는 인쇄소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봉운은 서문에서 언문을 가르치는 국문 학교와 선생이 없어서 학생들이 국문의 이치와 규범을 배우지 못해 음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외국인들의 질문에도 답변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우리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언문 옥편을 발행하여 사람들이 이치와 자음과 청탁과 고저를 분명히 알아야 하며, 우리글의 연구가 독립과 자주 사무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봉운은 세종이 만든 자모 28자 중 ‘ㆆ’(여린히읗), ‘ㆁ’(옛이응), ‘ㅿ’(반치음)이 음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진 것을 비판하고, 각각 ‘이’, ‘으’, ‘스’에 대한 단음으로 보았다. 한문을 읽을 때 사용하던 현토를 국문에 활용하여 과거, 현재, 미래, 명령, 금지 등 시간대와 상황에 따른 종결 어미를 소개하는 점도 특징이다. 또한 문명이 발전한 나라는 모두 탁음이 있다고 분석하며, 일본어의 탁음 표기 방식을 국문에 접목하여 탁음을 표기하는 규칙을 마련했다. 마지막 장 「새언문 규식」에서는 이봉운이 만든 문법 규칙을 활용하여 글을 서술했다.
[의의와 평가]
국문정리에서 설명한 국문 표기법은 이론적 근거가 미약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탓에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국어 사용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한글 문법 체계를 세우려 한 초기의 국어 학술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국문정리는 구한말 지식인이 국가 발전과 민족 자강을 위한 방법으로 국문 연구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연구한 저술로 의의가 크다.